터키 이스탄불에서 4일(현지시간)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는 최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달라진 세계 경제의 역학구도를 잘 보여줬다는 게 현지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미국 피츠버그 정상회의를 통해 G20이 G7을 대체하는 새로운 의사결정 기구로 격상됐다는 현실의 변화가 IMFC 회의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며 "특히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과 개도국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IMFC는 IMF 24개 이사국의 재무장관들이 참석하는 최고위급 회의로 IMF의 실질적인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IMFC 논의 결과에는 신흥 및 개도국의 요구들이 상당부분 포함됐다. IMF 지배구조 개혁이 대표적이다. IMFC는 선진국 중심의 과다한 쿼터 구조를 개혁하기로 하고 선진국에 할당된 쿼터 중 최소 5%를 신흥 · 개도국에 이전키로 합의했다. 이는 그만큼 신흥국들의 발언권이 세진다는 의미다.

한국도 수혜 대상이다. 한국은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쿼터는 2.245%지만 실제 쿼터는 1.346%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만 IMFC는 쿼터 개혁을 2011년 1월까지 끝내기로 했지만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IMF가 신흥 · 개도국의 경제위기 시 대응 방안을 마련토록 한 것도 신흥국의 위상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물은 건전한데 일시적 자금난 때문에 신흥국이 금융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IMF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IMFC는 이 밖에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 추진 △확장적 정책기조 유지 △출구전략 시 국제 공조 원칙 개발 등을 의결했다.

신 차관보는 "이번 회의 결과는 지난달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했던 내용을 반복하거나 약간 구체화한 정도"라며 "실질적으로 G20 정상회의 결과의 후속 조치 역할을 IMF가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연설에서 "미국이란 엔진이 이전만큼 강하지 못하다"며 "신흥국이 IMF 의사 결정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탄불에서 BBC 주최로 열린 세계 경제위기 토론회에 참석한 니올 퍼거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도 "위기를 계기로 (경제의 균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더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면서 "이는 경제적인 균형 조정일 뿐 아니라 지정학적인 재배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번 IMFC에서는 내년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스탄불을 찾은 한국 대표단에 각국의 면담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제 · 통화담당 집행위원을 면담했다. 알무니아 집행위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신 차관보를 비롯해 정은보 국제금융심의관 등 실무진 역시 예정에 없던 면담 요청에 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정종태 기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