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사 취임 1년 이희수씨 "의견 내기위해 영문자료 매일 100쪽씩 소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국인 직원수 쿼터 절반 불과"
지난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바빴던 국제 금융기구로 국제통화기금(IMF)을 꼽을 수 있다. 186개 회원국의 거시경제 정책을 점검하고 외환이 부족한 국가들에 동시다발적인 긴급지원을 해주느라 초비상이 걸렸다. 그 한 가운데 이희수 IMF 이사 겸 한국상주대표(사진)가 있다. 지난 4일 미 워싱턴 IMF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이 이사는 "벌써 1년이 됐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난해 4월 IMF 내 한국의 출자지분(쿼터)이 1.35%에서 1.41%로 결정된 뒤 11월 IMF에 파견돼 임기 2년의 첫 이사직에 올랐다. 부임 전에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냈다. 이 이사는 세계경제위기 불길을 잡은 'IMF 소방대'의 일원이었던 만큼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이사 자리는 IMF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상시 구성원입니다. 일주일에 세번 정례회의가 열리는데 상정되는 각종 정책 안건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시각을 담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하루 평균 100쪽 이상의 영문자료를 읽고 소화해야 합니다. "
실제 총 24명의 IMF 이사중 한 명인 그가 대표로서 맡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호주 뉴질랜드 몽골 등 13개국이다. 이 이사는 "부임 후 IMF에 구제금융을 급박하게 요청한 몽골과 셰이셀 2개국에 충분한 자금이 신속히 지원되도록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IMF가 최근 획기적인 구제금융 대출제도인 신축적신용공여라인(FCL)을 도입하는데 그의 역할이 컸다. 과거 IMF는 회원국에 구제금융을 주는 과정에서 과다한 정책 개입 등 대출조건을 까다롭게 해 해당 국가의 거부감이 컸다. 그는 여러 차례 이런 대출조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그 결과 FCL이 도입된 것.
그는 개인적으로 IMF와의 인연이 세번째인 게 경제위기 속 이사직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1986년 초 IMF의 3개월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한데 이어 1995~1997년 IMF 재정국의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면서 각국의 재정 자문활동을 했다. IMF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그는 IMF 근무는 외교관 업무와 다르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IMF에 한국의 정책담당자들이나 한국인들이 많이 포진할수록 세계경제의 흐름과 위기를 포착하는 안테나와 조기 경보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지난해 현재 IMF 내 한국인 수는 전체 인원(2386명)의 0.7%(16명)로 우리나라 쿼터 수준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근무 자격 기준이 엄격하고 쉽지 않은 근무 여건이 이유겠지만 젊은이들의 진취적인 자세가 요구됩니다. "
이 이사는 부임 뒤 우리 정부의 과장급과 국장급 파견자리를 각각 한명씩 늘렸다. 추가 증원 가능성도 점검해 보고 있다. IMF는 우리 정부와 함께 10월 말 서울과 부산에서 대규모 취업박람회를 가질 예정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