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서 용달 사업을 하는 권 모씨는 차 수리에 목돈이 필요해 지난달 지역 신협을 찾았다. 영세 자영업자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정부가 특례보증을 서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출 상담 후 그는 엉뚱하게도 매달 50만원의 적금을 가입하고 나왔다. 직원이 1000만원을 대출해주면서 '거래 실적을 올리려면 적금 하나는 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권한 탓이다.

서민과 자영업자를 위해 정부가 보증해주는 정책자금도 '꺾기'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꺾기는 대출을 해주는 대가로 상품 가입을 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배은희 한나라당 의원이 중소기업청에 의뢰한 '자영업자 보증 꺾기 관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정책자금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480명(16개 시도별 30명씩 표본조사) 가운데 36명(7.5%)이 상품 가입 요구를 받았다.

상품별로는 주택청약저축 등 적금 가입 요구가 19건으로 가장 많았다. 신용카드 발급(15건) 보험 가입(2건)을 권한 사례도 있었다. 대출자 20명은 실제로 이들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쉬쉬하던 정책자금 꺾기가 정부의 공식 조사로 실태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동통신 대리점,사진관,카센터 등 지역 자영업자들이었다. 청주에서 영어교습소를 운영하는 김 모씨는 "지난 7월 학원 확장을 위해 소상공인 지원 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창구 직원이 '거래가 없어서 대출이 안 된다'며 적금 가입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화장품대리점 대표인 서 모씨는 "지난달 1000만원의 자영업자 보증을 신청했더니 적금과 연금 상품을 설명해 당황스러웠다"며 "어려운 사람이 나라 돈을 빌리겠다는데 은행이 왜 영업을 하는지 의아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의 영세자영업자들로 대출이 불리한 약점 때문에 꺾기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배은희 의원은 "서민과 자영업자를 위한 보증 제도가 실제 운용에서는 허점을 드러낸 셈"이라며 "조사 대상을 전체 자영업자로 확대해 금융기관의 부당한 꺾기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