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면접을 해본 이들은 혀를 내두른다. 젊고 스펙 성적 모두 뛰어난 입사지망생들의 대답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다는 이유다. 상사가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를 내리면 어떻게 할지 물으면 거의 한결같이 "일단 '네' 하고 해보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개인 약속이 있는데 갑자기 회식을 하자고 하면 어쩌겠느냐에도 열 중 아홉이 망설이지 않고 "회사 일이 우선이니 취소하고 회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럴 때면 면접 대비 학원까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한편 누가 그런 답을 정답이라고 알려줬는지 궁금해진다고 한다.

획일적인 걸로 치면 옷차림은 더하다. 입사 면접 땐 남녀 할 것 없이 검정(감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와 흰 블라우스 차림으로 등장한다. 그랬던 그들이 입사 후엔 달라진다. 태도도 그렇고 여성의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면접 날 입었던 정장과 블라우스는 다시 보기 어려운 수도 많다.

어디서든 여성의 복장에 대해 대놓고 지적하는 일은 적다. 윗사람의 경우 자칫 잔소리하는 사람,개인적인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 몰릴까봐 대놓고 말하진 않으면서 속으로만 못마땅해 하는 일이 흔하다.

옷차림은 태도와 인사성 못지 않게 평가항목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경제위기가 몰아닥친 뒤 영국에선 구두미화원의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고 하거니와 자유복장을 허용하는 곳에서도 불황이 닥치면 다들 알아서 정장으로 복귀한다는 마당이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이 올 가을겨울 클래식한 정장과 함께 '흰 블라우스'를 내놓은 것도 불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장 프랑코 페레는 커다란 리본,이브 생 로랑은 V자형 깃,클로에는 풍성한 소매로 여성스러움을 살린 흰 블라우스를 선보였다.

브랜드에 상관없이 목선은 올라가고 소매 끝 역시 단정하게 여밈으로써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형태를 강조,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이 파이낸셜 타임스의 평가다. 흰 블라우스를 곁들인 정장은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반듯한 옷차림은 무게와 절제된 느낌을 부여한다.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과 지위 면에서 우리보다 몇 수 위인 미국과 유럽에서 커리어우먼용 복장으로 흰 블라우스가 주목받는다는 사실은 TV속 연예인같은 차림으로 출근하는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찢어진 청바지나 초미니 스커트는 자제할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