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란한 가족이 오붓하게 행복을 변주한다('가족').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매끄러운 브론즈 표면 사이로 흐른다('모정').'

한국 구상조각의 1세대 작가인 민복진씨(83)의 조각 작품에는 언제 보아도 훈훈한 가족애가 따뜻하게 묻어난다. 온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정분을 나누는 추석을 앞두고 그의 반세기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대규모 초대전이 25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민씨는 1950~1960년대를 풍미했던 추상표현주의 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평생을 가족 사랑과 인간의 정감을 주제로 조형미학을 구축해온 작가다. 1979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의 '르 살롱' 전에서 한국 조각가로는 처음 금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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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가 한평생 작업한 작품만도 600여점.남산 백범광장에 설치된 '김구 선생'의 동상을 비롯해 수유리의 '4 · 19의거탑',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의 세워진 대형 조각 '가족'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작가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과 작가 정신이 담긴 '가족''모자상'시리즈 등 모두 42점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클래식 음악처럼 은은하고 재질(대리석 · 브론즈)도 단순하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들을 표현하는데 일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회화가 가질 수 없는 입체감을 부드럽고 둥근 타원형으로 표현,역동적인 미감을 살려낸다.

"육중하고 차가운 대리석이나 브론즈 덩어리를 친구 삼아 가족에 담긴 메시지를 담금질해 왔는데 벌써 팔순을 넘겼네요. 요즘에도 서울 회기동 작업실에서 조각가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쉬엄 쉬엄 일하고 있습니다. 정과 망치를 들어야 조그만 행복이 마음 속에 똬리를 트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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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민씨의 작품세계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각의 예술적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초기 구상 계열의 인물상 제작을 제외하곤 조각인생 50년 내내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가족''모자'시리즈는 경천애인 사상을 조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군더더기같은 이미지를 제거하고 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내재율을 중시했다. 오히려 자애롭고 모성이 가득한 깊은 조형성과 단순화된 인물 표현이 있을 뿐이다.

"제가 5살 때쯤 큰 집에 양자로 들어갔어요. 남양주에서 양주로 시집와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면서 큰 사랑을 배웠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제가 조각 작업을 하는데 최고의 영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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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는 대한민국예술원회원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전업작가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맞춰 화보집도 출간했다.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