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년 전쯤 지구상에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1만년 정도 잠깐 공생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훨씬 유래가 오랜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현생인류가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가 있게 됐다. 생존경쟁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지고 현생인류가 이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현생인류가 사용한 도구가 우월했다는 설명도 있고,추상적 사고능력 덕분이라는 설명도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생인류가 경제적 동물이었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내놨다.

이 가설은 전통경제학이 기준으로 삼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맞닿아 있다. 한없는 욕망과 완벽한 합리성을 지니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복잡해지고 속도가 빨라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IBM컴퓨터에 맞먹는 기억용량을 갖고 있으며,마하트마 간디 같은 의지력을 발휘'하는 대단한 존재이고,또 그렇게 되도록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36.5℃ 인간의 경제학》에서 소개하는 행태경제이론들에 따르면 인간은 그런 근엄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슈퍼마켓 주인이 내건 '치약 1통 4000원,1인당 5개 한정' 같은 상술은 원숭이들이나 당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아니다. 이 광고문구를 보는 순간 갑자기 5개보다 더 많이 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같은 10만원이라도 내 주머니의 것은 더없이 귀중하지만 카드회사가 적립해주는 마일리지머니는 그냥 날려도 아깝지 않은 공돈이라고 생각한다. 재무제표와 시장분석 그래프를 연구하는 투자보다 주먹구구식 투자 쪽이 놀랄만한 승률을 올린다.

행태경제이론으로 보면 광우병 파동도 그림이 달라진다. 먹어서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지극히 낮은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생긴 난리를 전통경제학은 설명할 수 없다. 확률이 낮으면 촛불을 드는 사람도 적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많았다. 위험성을 부풀렸다는 '나쁜 방송' 때문이라는 설명도 과장됐다. 사람들은 값싼 쇠고기의 이득보다 위험성을 양보한 손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이다.

또 당첨 확률이 몹시 낮은 로또가 잘 팔리는 것은 사람들이 당첨 가능성을 부풀려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광우병도 발생 확률이 낮을수록 그 위험성을 부풀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근대경제학의 전제는 틀린 것인가? 합리적 선택과 동떨어진 일상의 현상들은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에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힘도 부치고 귀찮아서 '아무거나' 주문할 때도 있다.

개인홈페이지(www.jkl123.com)를 통해 경제현실에 대한 의견을 부지런히 내고 있는 저자는 태어난 지 불과 30년 정도밖에 안 된 행태경제이론을 '교과서 밖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아직 정설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비즈니스맨들은 벌써부터 인간의 비합리성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는 경제학이 나설 때다. 그래서 경제학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근엄한 인간상을 버려야만 36.5도 체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