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금융위기의 책임을 묻고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고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파산 1년(15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파산 당시 경영 사령탑을 맡았던 리처드 풀드 전 최고경영자(CEO · 63 · 사진)는 회사 붕괴의 원흉으로 몰리며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 데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풀드는 4일 로이터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도 세상이 한사코 자신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항변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는 "리먼 파산 1년을 맞아 언론에서 자신을 두고 어떤 얘기가 나올 줄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은 리먼 파산과 관련해 부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풀드는 작년 10월 의회 증언 당시 상당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정치인은 그를 '악한(villain)'이라고 불렀고 항의자들은 그를 감옥에 보내라고 외쳐댔다. 이후 그의 이름에는 탐욕과 오만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녔다. 풀드는 리먼이 망한 것은 경영 실책 때문이 아니라며 △투기세력의 쇼트셀링(공매도) △근거 없는 소문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강등 △거래 기업과 고객들의 자신감 상실 등을 꼽았다.

이 같은 변명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리먼 임직원들은 그의 독단적 경영 행태에 쓴소리를 하고 있다. '고릴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주위의 충고를 듣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인 탓이다. 부실채권 매매 책임자였던 로렌스 매카시 역시 "여러 차례 부동산 시장 거품이 조만간 꺼지고 차입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는 주장을 한 뒤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풀드는 버럭 화를 냈다. 근거 없는 비방이란 것이다. 하루 이틀 경영을 한 것도 아닌데,자신은 결코 바보도 아니고 패배주의자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리먼이 망할 것이라는 어떤 징조도 없었다고 항변했다.

풀드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탓에 요즘 맨해튼 유명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벽 쪽을 바라보고 앉는다. 리먼 파산 전에는 항상 문 쪽을 보면서 식사를 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