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 자고 나면 바뀌는 '자동차 지도'…서바이벌 게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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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완성차 업계의 재편 작업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판매 급감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의 '서바이벌 게임'이 촉발되면서 수십년간 지속돼 온 글로벌 과점 체제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틈을 비집고 중국 등 후발업체들이 세계 M&A(인수 · 합병) 시장에 뛰어들면서 구조 개편의 격랑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고효율 · 고연비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한 산업 패러다임 변화가 중첩되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그야말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가속화하는 글로벌 합종연횡
세계 자동차업계의 판도 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은 단연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업체의 몰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크라이슬러에 이어 20세기 세계 자동차산업을 이끌면서 '100년 자동차왕국'으로 통했던 GM은 올 상반기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통해 국영기업으로 재출발했다. 포드는 파산을 피했지만 볼보 매각에 나서는 등 여전히 구조조정이 진행형이다.
미국 업체들의 자산 · 브랜드 매각 등 구조조정은 북미시장 등의 '시장 공백'을 초래하면서 업체 간 치열한 판매경쟁을 야기하는 동시에 글로벌 M&A도 촉발시키고 있다. 후발업체들이 생존 능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도약 기회를 얻기 위해 M&A에 적극 가세하고 있어서다.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은 지난 6월 크라이슬러에 자동차 엔진 및 소형차 제조 기술 등을 이전하는 대가로 지분 20%를 인수했다. GM이 매물로 내놓은 오펠 · 새턴 · 사브 · 허머 등의 브랜드도 속속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오펠은 캐나다 부품업체인 마그나가 러시아 은행과 손잡고 인수에 성공했다. 새턴은 미국 2위 딜러업체인 펜스케 오토모티브 그룹에 매각됐고,사브는 스웨덴의 코닉세그에 인수됐다.
선두업체들도 덩치 불리기 싸움에 들어갔다.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인 독일 폭스바겐은 최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와 2011년까지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폭스바겐은 우선 포르쉐 지분 42%를 33억유로에 매입하기로 하고 앞으로 2년 안에 나머지 지분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업체 간 제휴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통적 경쟁자였던 BMW와 다임러그룹(메르세데스벤츠 등 보유)은 비용절감을 위해 부품공용화,플랫폼 공유,지분 맞교환 등에서 제휴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일본 미쓰비시와 프랑스 푸조-시트로앵도 하이브리드 엔진 등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 최근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생존 능력을 높이기 위한 합종연횡 시도를 지속할 것"이라며 "다만 1990년대와 같은 국경을 초월한 대형 M&A보다는 신흥업체들이 중심이 된 소규모 · 지역적 M&A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가 활성화되는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 아시아업체의 급부상
글로벌 합종연횡 과정에서 중국 업체의 행보도 주목을 끌고 있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 M&A 시장에 중국 업체들은 '단골손님'으로 떠올랐다.
중국 쓰촨성 중장비제조업체인 텅중중공업은 GM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브랜드 허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리자동차는 지난 3월 미국 포드와 한국의 쌍용자동차 등에 납품하고 있는 세계 2위 변속기업체인 DSI를 5600만달러에 인수했다. 지난 4월엔 중국 베이징 시 정부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인 베이징웨스트는 자동차부품업체 델파이의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사업 부문을 1억달러에 사들였다. 인수 시도가 무산되긴 했지만 베이징,지리자동차 등은 볼보,사브 인수전에도 뛰어들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은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내부 구조조정도 한창이다. 중국 정부는 디이 · 둥펑 · 상하이 · 창안 · 지리자동차 등 선도업체를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을 통 · 폐합해 연 생산능력 200만대 규모의 대형 업체 2~3개를 육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 인도 등 다른 아시아 업체들도 저력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 · 기아자동차는 소형차 경쟁력 등을 바탕으로 미국 중국 등에서 선전하면서 올 들어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였다. 인도는 타타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작년 포드로부터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해 글로벌 시장에 본격 진출한 타타는 올해 대당 2500달러짜리 초저가 경차인 '나노'를 출시,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GM이 최근 대당 4000달러짜리 초소형 초저가 자동차 생산 계획을 발표하는 등 타타의 행보는 글로벌 업체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린카 경쟁도 후끈
세계 자동차업계의 재편은 친환경차 경쟁이 가세하면서 한층 더 열기를 더하는 추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 친환경차 경쟁 1라운드가 일본 도요타와 혼다가 중심이 된 하이브리드카 진영의 승리로 사실상 끝난 가운데,후발업체들이 올해부터 전기차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미쓰비시는 지난달 순수전기차인 '아이미브(i-MiEV)' 양산을 시작했다. 닛산(리프) 스바루(스텔라) 등도 곧 순수 전기차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GM은 전기차 '시보레 볼트'를 내년 출시해 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도요타와 혼다는 가격경쟁에 나서면서 하이브리드카 대중화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업체들은 이외에도 수소연료전기차,에탄올카,클린 디젤차 등 다양한 형태의 친환경차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