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서비스가 굴뚝산업 판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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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입찰 소식을 듣고 중동으로 급하게 떠난 삼성중공업의 해외영업 담당 김모 대리.급하게 잡은 선주와의 첫 면담 자리였지만 요구사항을 듣자마자 정확한 견적서를 뽑아내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예전같으면 거제도의 엔지니어와 협의해 견적서를 만드는 데만 2~3일이 걸렸지만 조선해양 통합시스템인 '디지털 십야드'를 이용하면서부터는 상담 도중에 곧바로 견적을 뽑아 보여줄 수 있어 경쟁사보다 한발 빠른 대응이 가능해졌다.
#2. LG전자 멕시코 레이노사 법인에서 물류를 담당하는 라울 곤잘레스(가명)는 최근 디스플레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시간 내에 일을 마칠 수 있어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다. 지난 4월 위성으로 컨테이너의 물류 흐름을 실시간 파악하는 위치기반서비스(LBS) 시스템을 구축한 덕택에 입고 · 출하 관리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정보기술(IT)이 전통산업과 만나 새롭게 꽃피고 있다. 1990년대 중반 IT 기술이 통신,인터넷 등 일반 사용자들에게 디지털 기술을 보급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 IT는 전통산업 곳곳을 디지털화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기업의 자원관리에서 출발해 이제는 생산현장 전반에 통신 인프라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자재와 물류,견적까지 실시간 관리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자동차 · 조선 · 건설 · 교통 · 물류 · 의료 등 적용되는 산업군도 날로 확대되고 있다. 개인들의 엔터테인먼트 향유에 치우쳤던 IT가 말 그대로 생활 전반을 바꾸는 디지털 컨버전스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중공업이 삼성SDS를 통해 구축한 '디지털 십야드'는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 전반에 IT를 접목해 '똑똑한 조선소'로 탈바꿈시킨 사례다. 고객의 요구사항이 바뀔 때마다 실시간으로 견적서를 뽑아 대응하는 것은 물론,위성항법시스템(GPS)과 전자태그(RFID) 등을 이용해 조선소에 산재한 방대한 자재들을 손바닥 보듯 철저히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수십 척의 배를 건조하기 위해 십야드에 쌓여 있는 자재를 통합 관리하게 되면서 선박제조효율도 크게 높일 수 있게 됐다. 삼성중공업은 디지털 십야드 구축 후 연간 985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중공업도 KT와 협력해 십야드 전역에 와이브로망을 깔아 무선으로 선박 제조 과정을 원격 관리하는 와이브로 조선소를 오는 9월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세계 1위를 달리는 한국 조선의 역량을 한단계 높이기 위해 IT 기술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물류 분야의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는 LG전자와 LG CNS가 지난 4월 멕시코 생산법인에 적용한 LBS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600여개의 컨테이너에 유비쿼터스 단말기를 부착해 컨테이너 위치 및 이동경로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지금까지 작업자의 경험에 의존해오던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입고와 출하 관리를 모두 전산화해 물류 비용을 크게 절감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미 부품의 상당수를 전자 부품으로 바꾼 자동차 분야에서는 PC의 운영체제(OS)처럼 수많은 자동차 부품을 통합관리하는 운영체제까지 개발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현대자동차 그룹사인 오토에버시스템즈와 공동으로 자동차용 실시간 OS '로젝(ROSEK)'을 개발,안정성과 신뢰성을 체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로젝은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브레이크 등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ETRI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테크놀러지로부터 로젝의 국제표준(OSEK/VDX)' 인증까지 받았다.
SK C&C가 SK텔레콤 등 그룹사들과 함께 지난달 말 인천 송도에 오픈한 유비쿼터스도시(u-city) 체험관 '투모로우 시티'를 방문하면 미래 도시의 모습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밝아지는 가로등,버스 도착시간과 빈 좌석수를 가르쳐주는 발광다이오드(LED) 안내판,감성에 따라 음악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공원벤치,건강상태를 점검한 뒤 운동 처방을 내려주는 가정의 헬스 매니저까지 마치 사이버 도시를 연상시키는 기술들을 체험할 수 있다. 이들 기술은 국내외에서 건축 중인 u-city에 하나둘 적용되기 시작,곧 우리 삶을 바꿔놓게 될 전망이다.
안양시,안산시 등은 최근 LG CNS,SK C&C 등과 함께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을 구축,주민들에게 각종 교통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이 롯데백화점에 구축한 '쇼핑메이트'는 기업의 고객관리를 한단계 발전시켜 소비자들의 쇼핑까지 업그레이드시킨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백화점의 각종 사은행사 상품권 수령,할인 쿠폰 출력,경품 응모,전자 쿠폰 조회 등이 가능하고 자신의 연간 구매금액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함호상 ETRI 융합기술연구부문 부장은 "전통산업의 IT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장,제품,물류 등 전 분야에 신경망 같은 네트워크를 설치해야 한다"며 "이를 기반으로 각종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적용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