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수많은 어록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50년 정치인생 동안 DJ는 치밀한 논리로 핵심을 찌르고 좌중을 압도하는 뛰어난 달변가이자 대중연설가로 평가 받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그가 남긴 말들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옥중서신' 등을 통해 재야·운동권 인사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갔다. 이후 사면·복권으로 그가 세상으로 나온 1987년 이후 힘있는 발언들은 그를 지탱해준 최대의 정치적 무기였다.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등은 그가 생전에 즐겨 쓰던 문구들이다.

그는 통일과 관련한 주옥 같은 어록도 남겼다.
1992년 대선운동 과정에서는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이라는 표현으로 표심을 자극했다.

1998년 고려대 명예경제학 박사학위 수여식에서는 "햇볕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감싸기도 하지만 음지에 있는 약한 균들을 죽이는 것도 햇볕"이라고 말했다.

2000년 6월 평양 도착성명에서는 "여러분이 보고싶어 이곳에 왔다"며 통일에 관한 끝없는 염원을 드러냈다.

'지역주의 타파'에 관한 강한 의지도 수많은 말을 통해 남겼다.
1997년 11월 부산일보 대선후보 초청강연회에서 그는 "신한국당 최고지도자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는데 여러분도 나를 남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김해 김씨로 경상도 사람이다. 나의 두 며느리도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1998년 6월 인촌강좌 특가에서는 "지역주의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대통령을 못하면 못했지 절대로 동서분단을 방치할 수 없다"고 연설했다.

1999년 12월 CBS 비전 21 대회에서는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계층간에 대립하고, 세대간에 갈등해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며 지역주의 타파에 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임기가 끝난 후에도 그의 발언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그는 "통일부를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가"라며 일침을 놓았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듣고서는 "평생의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지난 7월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가 북한에 '퍼주기'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지난 10년간 대북지원금이 핵무장에 이용된 의혹이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쐐기를 박았다.

이밖에 1997년 '준비된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대권 도전 4수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햇볕정책', '제2의 건국' 등으로 자신의 통치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언급해가며 강조하고 새로운 주제를 하나씩 추가해 나가는 '얼레(reel) 화법'을 구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경닷컴 김은영 기자 mellis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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