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한 외모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중견기업 과장 서모씨(39 ·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는 결혼 2년 만에 이혼한 '돌아온 싱글'이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서씨의 성 능력 탓이다.

문제는 신혼 첫날 밤부터 시작됐다. 성 관계를 시작한 지 1분이 채 안 돼 끝낸 그를 아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신감을 상실한 그가 잠자리를 피하자 아내는 노골적으로 병원 치료를 요구했다.

이 때부터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부부의 금슬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파경을 맞게 됐다. 서씨는 함부로 자신의 남성 능력을 비하한 아내에 대해 분노와 수치심을,아내는 화만 내고 개선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남편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실망감으로 평행선을 긋다가 결별에 이르렀다.

서씨의 증상은 조루증.질내 삽입 후 사정에 이르는 시간이 1분 내외로 매우 짧고,자신이 사정 시간을 조절할 수 없으며,이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말한다. 대한남성과학회가 지난해 4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27.5%가 조루증이다. 그러나 대다수 남성들은 서씨처럼 자존심과 수치심만 앞세울 뿐 정작 증상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소극적이다. 이에 비해 성에 대한 관심이나 조루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는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다행히도 지난 7월 말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시판 허가를 받은 한국얀센의 '프릴리지'(성분명 다폭세틴)가 다음 달 하순께 국내에 시판될 예정이어서 기존의 약물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했거나,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로운 인지행동 요법을 시도하지 못했거나,중도 포기한 조루증 환자들이 수월하게 치료 전선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속마음과 겉행동이 다른 한국 남자

'세계 성태도 및 성행동 연구'(GSSAB)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성관계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87%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조사에 참여한 세계 20여개 국가들 중 1위였다. 이는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의 약 80%보다 높았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50%보다 차이가 크다.

조루 증상에 대한 스트레스도 한국 남성이 최고였다. 프릴리지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143개국 6000명 이상의 조루 환자에게 '자신의 성관계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 미국과 유럽은 조루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53.5%와 40.0%의 만족도를 보였다. 하지만 한국 남성은 26.6%에 불과했다. 또 '조루로 인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한국은 87.5%가 심각(보통 이상)하다고 답해 유럽의 50.7%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이를 의학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는 박약하기 그지없다. GSSAB에서 보면 성기능 문제를 전문의와 상담하는 한국 남성은 2%에 불과했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38%,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 국가의 30%,호주나 영국의 20%,미국 19%,심지어 일본의 9%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한국인에 강한 조루 치료제 '프릴리지'

이런 우리나라 남성들의 이중적인 성 관련 행태에 복음처럼 등장한 게 프릴리지다. 이 약은 조루증의 세 가지 진단 조건인 △질내 삽입 후 사정까지의 시간 △사정 조절 능력 △개인에게 미치는 스트레스 등을 모두 뛰어나게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른 나라 남성보다 한국 남성에게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기대를 모은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성(451명)은 기존 평균 1.2분이었던 삽입 후 사정에 이르는 시간이 프릴리지 30㎎ 복용군은 4분으로 3.4배,60㎎ 복용군은 4.5분으로 3.8배 증가했다. 이는 아시아인(1067명) 평균 사정 시간이 각각 3.9분,4.2분으로 늘어난 것보다 다소 높은 수치다.

또 첫 복용부터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사정지연 효과를 보였으며 복용량이 늘수록 효과도 비례해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사정조절 능력의 경우 복용 전에는 환자의 10% 미만이 만족했으나 12주간의 임상시험 종료 시점에는 '매우 좋다' 또는 '좋다'라고 답한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조루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들도 임상 시작 시점에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심각했으나 임상 종료 시점에 외국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의 비율은 임상 전 87.5%에 달했으나 임상 종료 시점에는 55.9%(30㎎ 복용)와 53.1%(60㎎ 복용)로 낮아졌다. 조루로 인한 개인적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조금 이하)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임상 전 11.6%에 불과했으나 임상 종료 후에는 각각 44.1%와 49.7%(60㎎ 복용)로 높아졌다. 성관계 만족도는 '보통'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임상 전 26.6%에서 각각 70.7%와 75.1%로 높아졌다.

◆아내가 적극 나서고 병원 문턱은 낮아질 듯

프릴리지 임상시험 지원자 모집과 프릴리지 시판 허가 보도 이후 한국얀센에는 이 약에 대해 관심을 갖는 소비자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올해 결혼 10년차인 박모씨(43 · 서울시 강북구 수유1동)는 2년 전 조루약 임상시험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기사에 잠시 눈길을 뒀지만 아내가 조루증에 이렇다할 불평을 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평소 말수가 적고 순종적이던 아내가 불쑥 자신을 조루증 임상시험 참여자로 등록시켰다. 내심 남편의 조루 증상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아내가 간절히 원하기에 박씨는 난감함을 무릅쓰고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됐다. 국내 임상시험을 진행한 박남철 부산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우려했던 바와 달리 임상 참여 희망자가 쇄도해 이례적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2배가량 인원을 늘렸다"며 "아내들이 치료를 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동안 조루증 환자들은 국소 마취제나 항우울제 등 먹는 약물로 제한적인 치료 효과를 얻는 데 그쳤다. 비뇨기과에서의 외과적 수술(음경배부신경절단술)과 인지행동 치료 등은 경제적 · 심리적 부담감과 번거로움이 컸다. 여자들이 산부인과 가기를 꺼리듯 남성도 비뇨기과를 기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먹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등장 이후 정력제나 보약 시장이 크게 줄었듯이 프릴리지가 시판되면 조루증을 치료하려는 '병원 문턱'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 프릴리지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 늘려 자연스럽게 사정 지연시켜















프릴리지는 사정 중추 내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을 증가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사정을 늦춘다.

세로토닌은 성적 흥분이나 식욕 등에 관여하는 일명 '행복 호르몬'.기존 항우울제는 최소 2~3주간 장기 투여해야 세로토닌의 재흡수(고갈)가 억제돼 약효가 나는 한편 이로 인한 오르가슴 저하,근육 무기력증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

이에 비해 프릴리지는 반감기가 2~4시간에 불과하고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단시간 강력하게 억제했다 해제하는 능력이 뛰어나 성 관계를 갖기 1~3시간 전에 복용하면 사정 지연에 충분할 만큼의 세로토닌이 사정 중추에 모이게 된다. 조루로 진단받은 18~64세 남성들이 복용하면 7시간 정도 효과가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