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예멘 인근 아덴만 해역.국내 중견 해운사인 S사 소속 5만7000GT(총t수)급 유조선에 갑자기 소형 보트가 맹렬한 기세로 따라붙었다. 악명 높은 소말리아 해적선이었다.

최고 속도인 13노트(시속 약 24㎞)로 운항했지만 20노트(시속 약 30㎞) 이상으로 따라오는 해적선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해적들은 배를 멈출 것을 요구하며 총격을 가했다. 화들짝 놀란 유조선은 연합함대에 구조 요청을 한 뒤 응사에 나섰다. 해적들은 대항 사격을 미처 예상치 못했는지 10여분을 머물다가 사라졌다.

국내 해운업체들이 해적을 피해 다니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12일 국토해양부가 발행한 '2009년 상반기 해적사건 발생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해적 사건은 총 24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한 114건(작년 연간 293건)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해적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지속적으로 해적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말리아 인근 해역 해적 사건은 지난해 상반기 24건에서 올 상반기 148건으로 6배 증가한 반면 나이지리아 등 다른 지역의 해적 사건 발생 건수는 큰 변화가 없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청해부대와 연합함대 등이 대응을 하고 있지만 고속정을 이용해 게릴라식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소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배의 속도가 느리거나 건현(수면에서 상갑판까지의 수직 거리)이 낮아 공격하기 쉬운 벌크선과 유조선을 주로 공격한다. 벌크선과 유조선은 최고 속도가 평균 11~15노트(시속 약 20~30㎞)에 불과해 20노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해적선에 쉽게 따라잡힌다.

이에 따라 STX팬오션은 최근 아덴만 지역을 지나는 자사 선박에 한국 해군의 호송 서비스를 반드시 이용하도록 했다. 호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을 때는 한 번 이용할 때마다 40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보안 요원을 승선토록 조치하고 있다.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 등의 연합함대에 속해 있는 보안 요원들은 유사시 연합함대 출동을 유도하는 일종의 '인질' 역할까지 겸한다.

현대상선은 해적이 많이 나타나는 지역을 통과할 때 선원들이 짝을 지어서 '해적 대비 당직'을 선다. 밤에는 '서치 라이트'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으며 해적이 배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고압수 분사기'도 마련했다. 해적선이 접근해 올 경우에는 지그재그 운항을 통해 추적을 뿌리치도록 교육도 했다. 배가 지그재그로 운항하면 배 주변에 와류(渦流 · 소용돌이)가 생겨 해적선들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