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던 두명의 미국 여기자 석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별명은 '뺀돌이 윌리(Slick Willy)'다. 현란한 달변에 '구렁이 담 넘는 듯'한 능수능란한 처세에 대해 미국인들이 애증섞인 별칭을 선사한 것.

하지만 여기자 2명과 함께 5일 로스앤젤레스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달변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례적인 침묵은 미국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치인 클린턴은 천마디 이상의 효과를 봤다.

실제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미국에 도착한 직후 마이크 앞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 억류 141일 만에 풀려난 여기자의 가족들이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냈지만 그는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취재진에게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클린턴의 화려한 귀환을 대서특필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석방된 여기자들이 아니라 바로 클린턴 전 대통령 자신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침묵은 '계산된 행동'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클린턴은 여기자 2명과 그들의 가족이 감격 속에 재회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여기자들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린 후 5분여를 비행기에서 기다렸다가 트랩에 모습을 나타냈다. 여기자 가족들을 위한 배려로 볼 수도 있지만 별도의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기 위해 계산된 연출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클린턴이 트랩에 내려서는 순간 현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클린턴은 평양 공항을 떠날 때도 카메라를 철저히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랩 아래에 대기 중이던 카메라를 향해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알리는 제스처로 가볍게 거수경례를 보내 마치 현역 대통령인 듯한 인상을 풍겼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