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4일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을 만났다. 이 위원은 "와이브로 활성화를 위해서 삼성전자가 다양한 컨버전스 단말기를 빠른 시일내 출시해줬으면 좋겠다"며 "통신업체들도 그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다양한 단말기를 내놓아 정부의 와이브로 활성화 정책에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와이브로 '어찌하오리까'

이 같은 대화 내용은 최근 와이브로 사업이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가 통신장비업체를 상대로 협조를 요청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와이브로 사업의 주역이 돼야 할 통신업체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어서다.

물론 좋은 단말기가 나온다고 해서 와이브로 사업이 당장 활기를 띨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날 이 위원 스스로도 얘기했듯이 와이브로 투자 확대를 위해선 △시스템 가격의 하락 △무선인터넷 활성화 △전국 주요도시의 와이브로망 구축 △국제 통용 주파수 표준의 채택 등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통신업체들의 입맛에 맞는 단말기 출시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난제들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마음은 급하다. 와이브로를 정체 상태에 빠진 국내 통신사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아야 하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의미있는 성과를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와이브로를 확산시키는 속도에 비하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통신업체들을 상대로 여러차례 투자 확대를 독려해봤지만 별무신통이다.

통신 사업자들도 할 말이 있다. 그들에게 와이브로는 일종의 '계륵'이다. 비즈니스의 외양은 화려하기 짝이 없지만 정작 돈이 안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006년 6월30일 KT와 SK텔레콤이 와이브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입자는 KT 20만9000명,SK텔레콤 1만5000명 등 모두 22만명에 머물러 있다. KT는 작년 말까지 와이브로 사업에 7300억원,SK텔레콤은 6200억원을 각각 쏟아부었지만 두 회사의 사업 매출은 3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업계 "접점 찾아야"

막대한 투자비도 걸림돌이다. 전국 어디서든 와이브로 음성통화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자별로 2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수익력이 불투명한 사업에 이처럼 막대한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의 딜레마는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해 낼 묘수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된 와이브로는 시속 120㎞ 이상으로 달리는 차량에서도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기술로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손꼽힌다.

삼성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관련 원천기술의 30%가량을 확보한 만큼 세계 장비시장을 선점하는 데 따른 기대효과도 크다. 미국 통신시장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ABI리서치는 올해 세계 와이브로 장비시장 규모가 작년보다 5배 커진 2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시간과 속도에 대한 판단의 차이다. 정부의 신산업 육성과 업계의 신사업 발굴 전략이 다양한 정책 지원과 효과적인 투자를 통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영태/김태훈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