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은 됐음직한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가장 큰 공원인 골든 게이트 파크.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로 된 거대한 건물이 나타난다.

과학박물관인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CAS)다. 겉으로만 봐서는 그냥 멋있게 지은 건물이라는 느낌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르다. 한여름인데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실내는 쾌적하다.

단열을 철저히 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뭐든 재활용…버린 청바지를 단열재로

재미있는 건 단열재로 사용된 것이 폐(廢)청바지라는 점.쓰레기더미에 묻힐 뻔한 청바지를 재활용하면서 완벽하게 단열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다. 이 건물에 사용된 콘크리트의 50%는 한번 쓴 재료를 재활용한 것이다.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전기 사용을 최소화한 친환경 건물이다. 미국 그린빌딩위원회(GBC)의 친환경건축 기준인 리드(LEED)의 최고 등급인 '골드' 인증을 받은 세계 최대 건물답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는 그동안 웅장함과 미관만을 강조해 왔다. 겉으론 그럴 듯했지만 따지고 보면 에너지 낭비와 비효율의 상징이었다. 이런 미국의 대도시들이 친환경 도시인 '그린 시티'로 재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캘리포니아주 대도시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 도시의 지향점은 세계의 '녹색 수도(green capital)'다. 세계의 정치수도인 워싱턴,경제수도인 뉴욕과 경쟁해 21세기 녹색수도의 위상만은 뺏길 수 없다는 야심을 착착 실현하고 있다.

그 선두에 샌프란시스코가 서 있다. 시내 대형 오피스 복합건물인 마스코니 컨벤션 센터 옥상.이곳은 축구장 3분의 2 크기의 태양광 패널이 뒤덮고 있다. 5330㎡ 면적에 자리잡은 태양광 패널은 5200여개.미국 대형 건물 태양광 설비 중 최대 규모다. 이곳에서만 400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675㎾)을 생산하고 있다. 대형 건물만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일반 가정에도 태양광 보급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내년까지 1만가구에 태양광 지붕을 설치한다는 목표다.

◆대중교통 수단도 친환경연료만 사용

샌프란시스코의 교통 수단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미 버스 지하철 등 시내 대중교통 수단은 100% 전기나 바이오디젤 차량으로 교체됐다. 도심 주차장에는 전기차 이용자를 위한 '플러그인 인프라(전기충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과 개인에 대한 세제 지원 프로그램인 '코뮤터 베니핏' 제도도 운영 중이다. 시외 거주지역과 시내 업무중심가를 연결하는 주요 고속화도로에는 2명 이상 탄 자동차만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도 적극적이다. 매주 평균 3000여명의 시민들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버릴 때도 휴대폰을 통해 '가전제품을 버리기엔 우리집에서 어디가 가깝고,누가 언제 픽업하는지' 등의 재활용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그 덕분에 재활용률이 부쩍 높아졌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의 폐자원 활용률은 72%.미국 내 최고 수준이다. 내년엔 이를 75%로 끌어올리고 2020년에는 쓰레기 배출 '제로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리집은 녹색집' 자발적 실천 확산

시민들의 자발적인 그린라이프 실천운동도 활성화되고 있다. 상류층 거주지역인 팔로알토에선 집앞에 'Green(녹색)' 팻말을 달아놓은 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팔로알토에서 시행하는 그린 시티 프로그램에 참여한 집주인들이 자발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전기요금이 ㎾h당 1.5센트 늘어난다. 가구당 연간 약 9.75달러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이 비용은 도시 환경정비와 친환경 인프라 구축사업에 사용된다.

데이비드 애스먼 샌프란시스코시 환경 부국장은 "2012년까지 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2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이를 위해 도심의 주요 빌딩들도 친환경 건물로 변모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로스앤젤레스도 뒤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공용주차장 옥상은 태양광 패널이 빼곡히 들어섰다. 스테이플 컨벤션 센터 등 주요 공용건물도 사용 전력 대부분을 태양광에 의존하고 있다. 도로 교통신호등이나 고속도로변 긴급전화 박스에도 예외 없이 태양광 집진시설이 갖춰졌다. 태양광 사용을 최대화해 전력 사용을 줄이겠다는 시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조치다.

◆유럽 · 중국업체들 "한수 배우자"

미국 서부 오리건주 최대 도시인 포틀랜드는 교통체계에 녹색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다. 자동차를 공동 사용하는 '집카(Zipcar)' 서비스는 이미 대중화됐다. 자동차 사용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 포틀랜드 도심엔 대중교통 수단인 지상전차 스트리트 카를 운행하고 있다. 경전철보다 폭이 좁고 길이가 짧아 건물 사이 좁은 틈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포틀랜드시는 고속도로 건설에 책정된 예산을 전환,스트리트 카 철로를 확장하는 데 쓰고 있다. 또 2006년 언덕이 많은 지형적 특성을 살려 케이블카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실현에 옮겼다. 에어 트램(air tram)으로 불리는 이 케이블카는 연간 100만명의 시민을 실어나르고 있다.

김상철 KOTRA 로스앤젤레스센터장은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는 세계 환경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중국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하다"며 "한국도 이들 지역의 녹색혁명 물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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