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나라당은 어제 국회에서 당정회의를 열고 비정규직법 후속 대책을 협의하고 나서 주목된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빠른 시일 안에 집행하기 위해 다음 달 중 임시국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며,정부 또한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인해 실직당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안정 대책을 빈틈없이 세워나가기로 했다. 당정이 정규직 전환 의무기간의 연장에 매달리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검토(檢討)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여야 정치권의 첨예한 대립으로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긴 하지만 당정이 일단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해법 마련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수긍할 만하다. 어차피 법 개정이 미뤄진 만큼 이번 기회에 현행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또다시 법시행 유예를 주장하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어 비정규직 해법을 제대로 내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해소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지 않고는 비정규직 문제가 결코 풀릴 수 없는 까닭이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어제 제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에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를 더 잘해주기 위해서 전부 정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회사는 그럴 능력이 없다"면서 "회사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주장을 하니까 결국은 해고자가 생긴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의 지급능력이나 업무행태 등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고용형태를 선택하는 것이 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첩경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법으로 고용형태를 강제하는 것은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따름이다.

비정규직 사용 사유와 사용기간 제한을 풀어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다. 인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압박하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줄이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근로자를 고용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