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음담패설'에도 지혜가…우리고전, 읽을수록 감칠맛 나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부족해도 넉넉하다 안대회 지음 / 김영사 / 332쪽 / 1만3000원
'세상 풍파는 환해(宦海 · 벼슬의 바다)에서 일어난다. 저 환해는 실제 바다는 아니므로 풍파도 진짜가 아니다. 풍파가 일지 않기 망정이지 일어난다면 곳곳의 벼슬자리는 난리 나고 요동친다. 그럴 때 부서지고 꺾이고 거꾸러지고 휩쓸리고 물에서 벗어나 육지로 떨어지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너무도 심하지 않은가? 이런 일은 실제 풍파는 일으키지 못하는 반면,가짜 풍파는 잘 일으킨다. 대체 어떻게 가짜가 진짜보다 더하단 말인가?'
조선 광해군 때 시인 임숙영이 쓴 글이다. 자연 세계에서는 큰 바람이 일어도 사물이 제자리를 잃지 않는데 벼슬의 바다인 '환해'에서는 부서지고 꺾이고 거꾸러지는 난장판이 된다. 자신의 능력을 잘 포장하는 사람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상처 받고 동해에서 마음을 달래는 옛 선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 위로 '뇌물 관료'와 '활극 국회'의 현대판 '풍파'가 파노라마처럼 겹쳐진다.
주옥같은 고전 산문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부족해도 넉넉하다》에는 풍자와 해학,사유와 성찰의 문장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옛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인정물태가 지금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천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삶의 지혜가 그 속에서 빛난다.
어느 시절에나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인물들의 백태는 억세고 거칠다. 집요한 성격은 아버지부터 아들까지 대를 잇는 모양이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과 그 아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는 사사건건 의견이 갈려서 서로가 제 의견을 내세우느라 서로 져본 적이 없다. 이웃 사람이 죽어 상제(祥祭)날이 가까워오자 제수로 쓸 초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서로 다른 날이라고 주장했다. 망자의 아들을 불러 물었더니 대답이 정재의 주장과 맞아떨어졌다. 그러자 서계는 "무릇 사람이 불초한 자식을 두면 죽은 날 제삿밥 얻어먹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
박세당과 박태보는 고집 세기로 유명했다. 부자가 모두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박세당은 뜻이 맞지 않자 조정을 등지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노론과 정치적으로 대결한 끝에 사문난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아들인 박태보도 고집 세기로는 아버지에 뒤지지 않았다. 소론이면서도 당론보다 소신을 따랐다. 기사환국 땐 인현왕후의 폐위를 강하게 반대하다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노량진에서 죽었다.
이에 비해 휴식과 여유의 틈새를 부러워한 이들의 문장에선 요즘 말로 '휴테크'의 의미까지 떠올리게 된다.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증조부인 박장원은 승정원에서 눈코뜰새없이 일하면서 '몸에 병이 들자 그제야 한가롭다'는 당시 구절을 떠올리며 자신뿐만 아니라 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가엾게 여겼다. 승정원이라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다. 왕을 지척에서 모시면서 잠시도 여유를 차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면서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동정을 표한 글이다.
이 밖에 가난에 몰려 돗자리를 짜는 선비의 서투른 손놀림과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의 엿보기 욕망,당신이나 잘하라는 비난 등에 얽힌 일화들이 흥미롭다. 빈궁한 처지를 돌보아주지도 않던 사람이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시는지요?" 하고 묻는 속태(俗態),입에서 나오는 대로 장황하게 말하며 남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는 악태(惡態),종일 음담패설만 늘어놓는 추태(醜態) 얘기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조선 광해군 때 시인 임숙영이 쓴 글이다. 자연 세계에서는 큰 바람이 일어도 사물이 제자리를 잃지 않는데 벼슬의 바다인 '환해'에서는 부서지고 꺾이고 거꾸러지는 난장판이 된다. 자신의 능력을 잘 포장하는 사람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상처 받고 동해에서 마음을 달래는 옛 선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 위로 '뇌물 관료'와 '활극 국회'의 현대판 '풍파'가 파노라마처럼 겹쳐진다.
주옥같은 고전 산문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부족해도 넉넉하다》에는 풍자와 해학,사유와 성찰의 문장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옛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인정물태가 지금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천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삶의 지혜가 그 속에서 빛난다.
어느 시절에나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인물들의 백태는 억세고 거칠다. 집요한 성격은 아버지부터 아들까지 대를 잇는 모양이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과 그 아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는 사사건건 의견이 갈려서 서로가 제 의견을 내세우느라 서로 져본 적이 없다. 이웃 사람이 죽어 상제(祥祭)날이 가까워오자 제수로 쓸 초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서로 다른 날이라고 주장했다. 망자의 아들을 불러 물었더니 대답이 정재의 주장과 맞아떨어졌다. 그러자 서계는 "무릇 사람이 불초한 자식을 두면 죽은 날 제삿밥 얻어먹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
박세당과 박태보는 고집 세기로 유명했다. 부자가 모두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박세당은 뜻이 맞지 않자 조정을 등지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노론과 정치적으로 대결한 끝에 사문난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아들인 박태보도 고집 세기로는 아버지에 뒤지지 않았다. 소론이면서도 당론보다 소신을 따랐다. 기사환국 땐 인현왕후의 폐위를 강하게 반대하다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노량진에서 죽었다.
이에 비해 휴식과 여유의 틈새를 부러워한 이들의 문장에선 요즘 말로 '휴테크'의 의미까지 떠올리게 된다.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증조부인 박장원은 승정원에서 눈코뜰새없이 일하면서 '몸에 병이 들자 그제야 한가롭다'는 당시 구절을 떠올리며 자신뿐만 아니라 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가엾게 여겼다. 승정원이라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다. 왕을 지척에서 모시면서 잠시도 여유를 차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면서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동정을 표한 글이다.
이 밖에 가난에 몰려 돗자리를 짜는 선비의 서투른 손놀림과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의 엿보기 욕망,당신이나 잘하라는 비난 등에 얽힌 일화들이 흥미롭다. 빈궁한 처지를 돌보아주지도 않던 사람이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시는지요?" 하고 묻는 속태(俗態),입에서 나오는 대로 장황하게 말하며 남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는 악태(惡態),종일 음담패설만 늘어놓는 추태(醜態) 얘기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