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는 괴로워'의 김용화 감독이 내놓은 신작 '국가대표'(30일 개봉)는 110억원을 투입한 대형 스포츠 드라마.제 앞가림도 못하던 '찌질한' 사내들이 스키점프 국가대표로 거듭나 세계 대회를 휩쓸었던 실화를 감동적으로 옮겼다. 잘 짜여진 드라마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다 컴퓨터그래픽도 수준급이어서 '해운대'와 흥행 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추격자'의 사이코패스로 스타덤에 오른 하정우(31)는 이 영화에서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 모국 스키점프 대표로 탈바꿈하는 해외 입양아 역을 맡았다. 최근 2년간 8편에 출연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소 스키를 즐겼던 터라 스키점프 선수란 배역에 남다른 흥미를 느꼈습니다. 배역을 위해 국가대표 스키팀과 함께 3개월간 고된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했어요. 그것만으로는 선수들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단 5명의 등록선수로 세계를 제패하기까지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

한겨울 평창과 양수리에서 진행된 스키점프 촬영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수은주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더군요. 종이컵에 물을 받아놓으면 금세 얼어붙는 강추위 속에서 스키점프복만 입고 촬영에 임했습니다. 한번은 미끄러져 팔이 부러져 6주간 반 깁스 상태로 지내며 촬영 때만 깁스를 풀었습니다. 12층 아파트 높이의 스키점프 타워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컸고요. 용변을 보기 위해 차를 타고 20분이나 나가기도 했습니다. "

촬영이 어려웠던 만큼 보람도 컸다고 한다. 스키점프 신은 훌륭하게 형상화됐고 선수들의 사연은 애틋하면서도 웃음을 준다. 특히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고국에 마음을 열어가는 입양아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까지 활짝 열어젖힌다.

"요즘 스포츠영화들처럼 이 작품도 우승 자체가 아니라 우승을 향한 눈물겨운 도전에 맞춰져 있습니다. 1등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베이징올림픽에서 이배영 선수가 역기를 드는 데 실패하고 주저앉아 우는 모습에 관객들은 갈채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금메달에 도전하는 모습이야말로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

이 작품을 포함해 지난해부터 올 연말 개봉 예정 작품까지 무려 8편이나 출연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돈 때문이 아니에요. '비스티보이즈''보트' 등 저예산 영화들에도 출연하고 조연도 마다하지 않으니까요. 미국과 일본 배우들은 한 해 3~5편 출연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초짜 배우로 지금은 맷집을 키우고 연마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20대를 멋 모르고 보냈지만 30대를 열심히 일하다보면 40대에는 결과물을 얻을 것으로 봅니다. 한낱 배우로만 사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

이 영화에는 부친인 탤런트 김용건씨가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창설을 막후에서 지휘하는 정치인으로 함께 출연했다. 배우의 아들이란 '굴레'가 그의 연기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잘해야 본전이죠.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연기는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김성훈이란 본명과 전혀 다른 '하정우'란 예명을 쓰는 것도 아버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겠다기보다는 내 일을 내가 알아서 한다는 의미였어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40년 이상 걸었던 연기 인생은 저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의지할 수 있는 등불이 있다는 건 좋습니다. "

그는 올 가을께 스릴러 '패럴렐 라이프'와 로맨스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을 선보인 뒤 내년에는 '추격자' 속편 격인 '황해'로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