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규모를 무리하게 키우기보다는 지금처럼 소규모를 유지하면서 생명력이 긴 책을 꾸준히 펴내는 것이 제 꿈입니다. "

미국 유학파이자 젊은 CEO(최고경영자)답지 않게 조미현 대표는 이처럼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 현암사는 최근 10년간 직원 수 25~3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부친에 이어 조 대표도 소형 출판사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조 대표는 "출판사 규모가 커지면 회사 운영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책을 공산품처럼 찍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부친인 조 회장은 올초 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큰 돈을 벌 생각은 말아라.밥 세 끼 먹고 남은 돈은 모두 책 만드는 데만 쓰라"는 조언을 했다.

조 대표는 "외국에서 생긴 지 100년 넘는 출판사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피땀 흘려 일군 출판사를 100년 이상 가는 장수기업으로 키워내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은 갖겠지만 거기에 의지하고 묻어가는 것은 경계하겠다"며 출판사 경영에 있어 할아버지,부친과 차별화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그 첫 시도로 조 대표는 논어 도덕경 등 동양고전 출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법전류 외에 환경,우리 문화,우리 자연 등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 현암사가 인문교양서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조 대표는 "언젠가는 현암사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책을 가장 많이 출간한 출판사로 기억될 것"이라며 "동양고전의 원전취지를 살리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계속 출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한 조 대표는 유학시절 랜덤하우스 어린이 파트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2007년 어린이책 전문 자회사 '은나팔'을 설립했다.

그는 "출판업 일을 하다 보니 책 만드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 전공을 살려 미술 관련 책들도 많이 펴내겠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현암사가 64년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로 '신의'와 '성실'을 근간으로 한 회사의 경영방침을 꼽았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한 현암사는 지금까지 직원 월급은 물론 인쇄소 · 제본소 하청업체에 대금지불 약속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이어 "내가 사장으로 있는 것보다 현암사가 100년 장수기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내 능력이 못 미치면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