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을 둘러싼 한국 내 논란은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런 법은 상상할 수 없다. 비정규직 근로자 채용은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기업과 근로자 간에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해 이뤄지는 것일 뿐,국회가 간섭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원칙과 달리 국회가 개입하려면 일 처리가 철두철미해야 함에도 국회의 잘못된 입법으로 당장 80만명의 비정규 근로자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생계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에 의존했던 중소기업들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 법안을 통과시켰을 당시,2년 시한이 끝나면 이런 엄청난 재앙이 발생할지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여야가 아직도 유예기간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잘못된 법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에게 넘기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미 의회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법안은 재투표로 무효화시킨다.

한심한 것은 국회 내 과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민주당에 맞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한나라당이 제안한 비정규직 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는 결코 법안을 본회의에서 상정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실제로 이 법안은 벌써 몇 달째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일은 미 의회에선 상상할 수 없다. 야당의원은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될 수 없다. 미 하원의 경우 의장은 물론 19개 상임위원회와 그에 속한 소위원회까지 합쳐 50개가 넘는 위원장직이 모두 여당 몫이다. 여당이 위원장직을 독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의 심판인 선거 결과를 엄숙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총선에서 국민은 민주당에 실망해 한나라당에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주었다. 이는 한나라당이 책임을 지고 정치를 이끌어 나가라는 것이지 야당과 사이좋게 자리를 나눠먹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법을 개정해 미국식으로 여당이 위원장직을 독점하는 제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당은 억울하면 다음 선거에 국민을 설득해 다수당이 돼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의회제도다.

비정규직 법의 또다른 문제는 법 집행에 따른 예산이 법에 누락돼 있는 점이다. 가령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정부가 일부 부담하고 나머지는 면세를 통해 중소기업의 재정 부담을 거의 없애야 하며,이런 조항이 법에 명시돼야 한다. 국회가 입법을 통해 강제로 80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려 하면서 이에 드는 재정적 부담을 모두 기업에 전가하는 건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 새로운 법안에는 반드시 관련 예산도 포함시켜야 한다.

다음은 기존의 법으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생계보장 문제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이 끝난 6월30일 전까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 통과에 실패한 국회는 7월1일부터 새로운 해결법이 통과돼 발효될 때까지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겪는 재정적 손실(생계비)을 책임져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면 국회 예산에서라도 충당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개인소득이 2만달러 이하로 세계 42위라는 보도를 접했다.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이 개인소득 42위라는 것은 실망스럽다. 국회가 비정규직 법 하나 해결 못하고 기업인들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니 언제 4만달러 목표를 달성하겠는가. 대한민국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거듭 나야 한다.

/전 미 연방 하원의원 · 워싱턴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