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이공계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소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느 이공계 원로는 한국의 장래는 불투명하다고 한탄했다. 이제는 이공계 위기에 대한 불감증을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지경이라 더욱 안타깝다.

만약 한·일 축구나 야구를 13:0으로 졌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포츠 신문은 물론이고 다음날 조간신문 1면에 “충격!”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풀죽은 팬들의 눈물과 원성이 대서특필 되고, 감독은 물론 협회 임원들까지 진퇴가 오르내릴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 사회적인 관점에서 우리 스포츠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열을 올릴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에게 13:0으로 지고 있는 게 정말로 있다.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다. 13:0!

1:0에서 시작해 13:0이 되도록 우리 사회가 이런 일방적 패배에 분통을 터뜨리고 대서특필하는 분위기가 연출된 적이 있던가. 우리 스스로가 이런 패배에 분노할 줄 모르는 책임이 어디의 누구에게 있을까. 물론 야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주로서 스포츠를 얕잡아보자는 말이 아니다. 편중된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스포츠 강국만으론 선진국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공대출신 전문가들을 흔히 연구원, 엔지니어 정도로 국한하는 경향이 강하다. 폐쇄된 공간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된 일을 하는 단순반복 노동자란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그러나 적어도 공인(工人)의 본래 의미는 그렇지 않다.

공업(工業)의 工(자)를 풀이하면 위의 하늘[ㅡ]과 아래 땅[ㅡ]을 연결[ l ]하는 게 바로 공업이다. 공인(工人)이란 바로 하늘의 이치와 땅의 자원을 연결하는 자를 일컫는다. 창조적이고 신령스런 일을 하는 자가 바로 공인이다. 공업 종사자들은 스스로 긍지를 가져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공대생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부심을 같기 힘들다. 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학생들은 이른바 ‘사’자 자격증 학과에 몰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공계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있지만, 넓게 퍼져있는 직업에 대한 좁은 시각 때문일 수도 있다. 무선통신 발전사를 돌아보자.

나중에 모토롤라의 창업주가 되는 ‘폴 갤빈’은 초기에 미국 최대 기업인 포드자동차 창업주 헨리 포드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이걸 자동차에 장치하면 어떨까요?”
그가 내민 것은 손가락만 한 진공관이 대여섯 개나 솟아있는 복잡한 전선이 연결된 커다란 박스였다. 헨리 포드는 기가 막혀서, “당신 정신이 있소? 이런 건 당신 안방에나 설치하시오.”하며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폴 갤빈이 내민 장치는 다름 아닌 초기의 진공관 라디오였다. 라디오를 자동차에 설치하자는 제안이었다. 지금은 자동차의 필수 장치가 된 ‘카 오디오’의 원조는 이렇게 문전박대 당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CEO로 꼽히는 헨리 포드도 이런 실수를 했다.

폴 갤빈은 부피를 축소하여 무선통신 장비를 만들었다. 폴 갤빈은 아들과 합세하여 모토롤라를 세계 최대의 무선 통신업체로 키운다. 창업자인 폴 갤빈이 사망할 당시(1959년) 모토롤라는 군사, 우주 및 상업용 통신의 선두주자였다.

1969년 7월 아폴로 우주선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이 작은 발걸음 하나는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발걸음”이라고 외쳤다. 전 세계를 감격시켰던 그 생생한 육성이 머나먼 달로부터 지구에 전송된 장치는 바로 모토롤라의 통신기술이 있었다. 그래서 흔히 모토롤라의 60년 역사는 현대 통신기기의 발달사라고 한다.

그런데 무선 통신 기술을 발명하고 상용화시킨 인물은 폴 갤빈이 아니다.
1900년대 당시만 해도 구리선을 통해야만 전기와 음성이 전해지던 유선의 시대였다. 앞선 과학자라고 할지라도 공중에 음성을 온전한 보내고 받는 무선통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마르코니는 미국과 유럽 대륙사이의 무선통신 실험에 성공한다.

하지만 상용화까지의 길은 멀었다. 무선 통신기술은 세계 제 1차 대전 때, 승전국의 명암을 바꿀 정도로 막강한 기술력이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중전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던 시기, 프랑스 비행기에 처음 장착한 무선전화의 위력은 연합국 비행기 모두에게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공중에서 정찰한 정보를 지상으로 곧바로 송출하여 적군보다 정보에서 앞섰고, 비행기 끼리 상호 통신하여 우수한 전투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 군용 무선 통신 기술은 민간인 무선 전화기로 이전되었다. 자동차에 라디오를 장착하려고 했던 모토롤라가 무선전화기를 장착하여 일거에 전 세계를 석권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선 통신의 최초 발명가 마르코니는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용화에 성공한 이는 모토롤라의 폴 갤빈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기술이 보완 되었지만 상용화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발명가 따로 있고 돈 버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발명과 돈은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발명가이면서 위대한 경영자는 찾기 어렵다. 있다 해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선입견과는 다른 숨은 경영자가 있다.

하늘에 있는 전파의 길을 땅의 광석을 이용해 인간이 통신하게 만든 기술이 무선통신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공업(工業). 하늘에는 아직도 인간이 활용하지 않는 햇빛, 공기 같은 자원이 가득하다. 이를 땅의 광석과 연결하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이런 거대한 일은 이공계인들이 실행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통신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명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자가 막대한 자본까지 거머쥔다면 세상은 어찌 될 것인가.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원리를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유명 인사가 된 뒤론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재능과 부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이야 한도 끝도 없지만, 만약 하늘이 있다면 한 곳에 집중되는 이런 현상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재주 부리는 자와 돈 버는 자가 따로 있는 까닭은 하늘이 장사하는 능력과 하늘의 이치를 발견하는 두 가지 재능을 한꺼번에 주길 꺼리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높은 지위의 공직자, 유명한 예술가, 촉망받는 의사가 되더라도 장사 수완 좋은 경영자들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모두가 재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스스로 긍지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경제적 부(富)로 환산할 생각만 한다면, 자신의 행복은 삼만 팔천 리 밖에 있다.

세상은 꽃밭이다. 모두가 한 가지 색깔의 꽃만 피운다면 얼마나 세상이 밋밋할까. 형형색색 각기 다른 꽃을 피우기에 자연은 아름답다. 인간이야말로 하나하나가 소중한 꽃이다. 스스로 꽃임을 자각하는 자야말로 자신만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대자연의 마음과 함께하며 꽃밭 전체를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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