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커피를 매우 좋아했다. 그러니 전속 바리스타 하나 정도 둘 법하다. 그런데 그 바리스타가 복잡한 과거를 갖고 있는 여자 사기꾼이라면 어떨까.

소설가 김탁환씨(41)의 장편소설 《노서아 가비》(살림)는 우리의 근대사를 '커피'와 '사기꾼 바리스타'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김씨는 "근대를 상징하는 커피를 소재로 우리 근대를 경쾌하고 가볍게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인 '노서아 가비'는 '러시아 커피'를 당시 발음대로 읽은 것이다.

소설은 고종이 1898년 아관파천 당시 커피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을 기둥으로 전개된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역관 김홍륙이 흑산도로 유배갈 처지에 몰리자,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과 세자 순종이 즐겨 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탔다. 다행히 고종은 입에 머금었던 커피를 금방 뱉어내서 별 탈이 없었지만 한 모금 넘긴 순종은 이가 몽땅 빠져 의치 18개를 해넣어야 했다. 김씨는 이 사건의 중심부에 전직 사기꾼,현직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라는 여성을 세웠다.

따냐는 역관인 아버지가 청나라 천자의 하사품을 훔쳐 도망쳤다는 누명을 쓰고 대역죄인이 되자,열아홉 나이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떠나게 된 파란만장한 운명의 소유자다. 이런저런 사기를 치며 살아가던 따냐는 우연히 만나 연인사이로 발전한 이반을 따라 조선에 돌아온다. 열렬한 커피 애호가인 고종을 위해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일을 하게 된 따냐는 본의아니게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음모에 휘말리고,고종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씨는 "한복을 입고 느리게 움직이는 사극 속 전형적 여성상을 벗어던지고 '확 가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