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물의 신체기능이 퇴화하는 현상이다. 세포가 노화하면 스스로 분열하는 능력이 감소하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질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하고 종국엔 사망에 이른다.


한의학은 인체의 원동력을 정(精),기(氣),신(神),혈(血)로 본다. 정은 신장의 정액,뇌와 척수를 흐르는 척수액,뼈속의 수액 등 인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미세물질이다. 부족하면 생식능력이 저하되고 노화가 진행된다. 기는 생명활동을 주관하는 무형의 근원적 에너지다. 신은 기에서 비롯된 정신을 일컫는데 쇠약해지면 인지기능 저하와 정신질환이 초래된다. 혈은 기의 작용에 의해 인체를 돌아다니면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유형의 물질로 주로 음식물에서 얻어진다.

이에 따라 한의학은 정,기,신의 보존과 혈의 원활한 공급을 통해 늙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장수를 위한 양생법 또는 섭생법을 만들어 실천토록 가르쳤고 침으로 기운을 조절하고 뜸과 보약으로 기운을 보강하는 치료법을 써왔다. 이 때문에 젊은 층보다는 장년과 노인에게 더 적합한 게 한방치료다.

정,기,신이 상하지 않으려면 음양이 잘 조절돼야 한다. 너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근심이 많은 것,너무 많이 먹거나 오랫동안 누워 있는 것,과로 등은 음양의 조화를 깨뜨려 노화를 촉진한다. 한의학에선 질병이 기(氣)→태(態)→형(形)의 단계로 깊어진다고 봤다. 그래서 질병이 중증으로 고착되기(形化) 전에 기를 조절하는 노력을 취했고 병이 오기 전의 상태인 미병(未病)의 관리를 중시했다. 실제 눈에 보이는 질병보다 정확히 정의내리기 힘든 증후군들이 많은 지금과 같은 시대에 미병을 치유하려던 시도는 예방의학적 가치가 있었다.

침 치료는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고 기의 과부족을 바로잡으며 항노화 효과도 낸다. 대표적인 게 족삼리(무릎 아래 부위)에 침을 놓는 것이다. 족삼리는 위의 경락에 속하며 소화기능을 촉진하며 하체를 튼실하게 해주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뜸은 침보다는 자극이 강렬하지 않지만 경혈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말린 쑥을 놓고 불을 붙여 피부에 강한 열자극을 전달하는 치료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신체의 대사기능이 저하되고 맥박 수가 감소하는 것을 막아주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예부터 몸이 시리거나 차갑고,저린 증상이 있거나 기운이 부족하면 뜸을 떠서 병을 예방 또는 치료해왔다. 뜸을 놓는 혈자리 중 항노화 효과가 가장 뛰어난 게 관원혈,즉 단전(배꼽부위)이다. 평소에 매일 3~5장 정도의 뜸을 뜨면 원기를 보충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성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다.

예부터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1년에 서너 차례 보약을 먹었다. 보약은 부족한 정,기,신,혈을 보완하므로 항노화 치료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인삼과 녹용이다. 인삼 함유 처방으로는 경옥고와 십전대보탕 등,녹용 함유 처방으로는 공진단과 녹용대보탕 등이 애용된다.

한의학에만 있는 사상체질의학은 마음과 몸의 관계를 더 세밀히 분석해 체질에 따른 양생법을 따로 제시했다. 체질적 취약성이 무엇인지를 규정해 이를 극복할 방법을 일러줬다. 예컨대 국내서 가장 많은 태음인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질병을 일으킬수 있고 게으르고 많이 먹음으로써 비만 등 성인병이 오기 쉬운 체질이다. 소음인은 항상 불안해하는 마음이 병을 유발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소화기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태양인 소양인 등 양인들은 기운이 주로 위로 치솟기 때문에 아래가 허한 상태가 된다. 긴박한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체질이 갈수록 양인화돼가는 경향이 있다. 마음가짐,음식과 약물 섭취 등에서 양보다 음을 중시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위로 솟구치는 기운이 병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사상체질의학은 무엇보다도 마음 다스리기를 강조한다. 태음인은 모든 것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을 경계하고,소양인은 공적인 일을 사사로이 처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의학은 바람직한 장수의 비결로 공경(恭敬)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과욕을 부리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안일한 것 등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과 보약을 적절히 섭취하면 누구나 무병장수할 수 있다.

김달래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사상체질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