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행사에는 지난해의 촛불열기 같은 시민들의 호응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열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각이 더 컸다는 게 행사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추모는 추모로 끝나야 한다고 본다. 대규모 집회를 통해 세를 과시하려는 모양새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화합과 용서의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주변화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상대방을 무시하면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촛불시위' 열기는 없었다.
작년 5월2일 촛불문화제로 시작해 8월15일까지 100일간 이어진 촛불시위에는 93만2680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하지만 이날 6 · 10 범국민대회 집회 현장 어디에서도 작년의 '촛불열기' 같은 시민들의 참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범국민대회의 본 행사에 앞서 오전 11시부터 40분 동안 진행된 '6 · 10의 현재적 의미' 특강에는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본 행사에도 시민들의 참여는 적었다. 경찰이 행사장을 봉쇄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주최 측을 당혹스럽게 할 만한 정도였다.
김모씨(20 · 고려대 법학과)는 "민주적인 절차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불법 집회로 규정해 개방을 불허한 서울광장에 난입해 농성을 하는 건 아이러니"라며 "이는 민주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 스스로 존립 기반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세력 결집,보혁 갈등 재현되나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진보 성향의 시국 행사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보수단체들이 이례적으로 기민하게 결집하며 진보진영을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9일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이 '안보 ·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 통합을 강조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는가 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대학교수들의 잇단 시국선언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이 같은 공세로 시국은 보수와 진보진영 간 보혁(保革)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교수는 "권력을 가진 쪽은 광장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싫어하고 반대 측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심 이반을 계속 발전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여름철을 맞아 '하투'를 이끄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투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점도 보수진영을 단합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진보진영은 보수 측의 이 같은 공세적 대응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평가절하하는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자칫 보 · 혁 대결 구도에 묻혀 국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