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제작자로 평가받고 있지만,막상 행적은 속설로만 전해질 뿐 생몰연대마저 확실치 않다.

김정호의 생애를 다룬 장편 역사소설 《고산자》(문학동네)를 출간한 소설가 박범신씨(63)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산자는 역사가 유기한 인물"이라면서 "그가 남긴 업적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박씨가 그려낸 김정호는 '평생 그 시대로부터 따돌림당한 고산자(孤山子)'이자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뜻이 드높은 고산자(高山子)','고요하고 자애로운 옛산에 기대어 살고 싶어한 고산자(古山子)'이다. 소

설 속 고산자는 관아가 내준 엉성한 지도를 믿고 산길로 들었다가 끝끝내 길을 찾아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때문에 정확한 지도 제작에 매진하게 되는 인물이다. 당시 지도는 지엄한 나라의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기 때문에,필부가 이용할 수 있게끔 제작되지 못했다. 게다가 부정확했다.

지도란 '시기를 살펴 위급할 때엔 가히 생사를 손바닥으로 뒤집을 수 있는 만민의 저울'이라고 여긴 고산자는 온갖 고난을 겪으며 정확한 지도 제작에 전념한다. 그가 이용한 판목도 값싼 피나무였고,그나마 아끼느라 판목 두께를 얇게 썰어놓고 앞뒤에 모두 지도를 새겨넣어야 했다. 하지만 '손끝이 갈라지고 엉치뼈에 좀이 슬 만큼 밤낮없이 쭈그려앉아'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를 기다렸던 건 후한 상이 아니라 적국과 내통하는 첩자라는 얼토당토않은 혐의와 모진 매질이었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여러 번 방문하는 등 조선 곳곳을 돌아다녔고 첩자로 몰려 옥사했다는 속설로 알려져 있지만,박씨는 "전국을 그렇게 떠돌아다니다 보면 지도를 그릴 틈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지도를 모아서 과학적인 안목과 통찰력을 발휘해 정확한 지도를 만든 뛰어난 인문학자라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 목공예가도 그렇게 하기 힘들 만큼 뛰어난 그림 실력이 엿보인다"면서 "고산자는 인문학,예술,과학의 3박자를 갖추었지만 신분이 낮아 역사에서 버림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길에서 길로 떠돌았고,지식인이 해야할 일을 했음에도 권력의 핍박을 받아야 했다는 두 가지 점 때문에 예전부터 고산자에 매료됐다"면서 "고산자의 신분이 중인 이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아,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에게 악용당하기도 했다고 박씨는 지적했다. 박씨는 "무인도인 독도는 굳이 지도에 새겨넣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독도까지 포함하면 목판 제작이 어려워져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면서 소설 속에서 고산자를 위한 변호를 펼치기도 했다.

이번 소설로 처음 역사소설에 도전한 박씨는 "당대의 현실에 어떻게 응전하고 관계맺으며 살아야 할지 고산자에게 배웠다"면서 "앞으로도 역사소설을 종종 써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