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화 위상이 흔들리면서 세계 기축통화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당분간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유럽연합(EU)과 일본 중국 등이 자국 통화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문제를 연구하는 니어(NEAR)재단은 31일 아시아개발은행연구원(ADBI)과 공동으로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러의 미래,그리고 아시아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달러위상 변화 없을 것"

기축통화로서 달러 위상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전문가는 리처드 쿠퍼 미국 하버드대 교수다. 쿠퍼 교수는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은 영어가 국제 공용어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제적인 합의나 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쿠퍼 교수는 "유럽과 일본은 인구 고령화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할 것"이라며 "경제적인 위상 자체가 약해지는 국가의 통화가 국제 통화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해서는 "위안화가 국제 통화가 되려면 중국의 금융시장이 좀더 개방돼야 하고 정부채권이 유통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될 수 있어야 한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피터 모건 ADBI 선임컨설턴트도 '달러 대세론'에 힘을 보탰다. 그는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 등 달러 가치가 하락할 위험은 있다"면서도 "이제까지 달러의 실질실효환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한 적은 없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인도 등 신흥 국가의 통화가 경제 성장과 함께 부상하겠지만 이 과정은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 통화협력으로 '포스트 달러' 대비"

아시아 학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계속 남는다고 하더라도 달러 부족으로 외환위기는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달러의 대안이 없다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며 '달러 대세론'을 따를 수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한 · 중 · 일 3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을 포함한 아시아 통화협력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한국정부의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

허 차관은 "아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에 상응해 국제 무대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 간 통화협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허 판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중국 정부가 위안화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진짜 목적은 위안화를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로 키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의 가치 하락에 따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방어적인 측면이 크다"며 "위안화의 세계화는 아시아 지역 통화협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이지 오가와 일본 히토스바시대 교수는 "아시아 국가가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동 물가안정목표제,공동 환율체계 등의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머스 윌레트 미국 클레어몬트대 교수는 "각국의 금융시장 제도가 다르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달라 아시아 국가들이 가까운 장래에 공동통화를 도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유승호/유창재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