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밤 방송되는 MBC 'PD수첩'에서는 '봉하의 충격, 그 후 3일'을 심층취재했다.

평화로운 주말 아침인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봉하마을발 비보는 온 나라를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속보를 전하기 위한 언론사의 긴급 호외가 발행되었고, 전국의 많은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서울의 덕수궁 앞 대한문에서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임시 분향소’가 긴급히 마련되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죽음을 택한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과 분향소 주변을 봉쇄한 경찰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시각, 봉하마을에서도 그 과정에서 취재진과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방문 및 조문을 막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과 노 전 대통령 측근들에 의해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충격의 하루가 지나고, 봉하마을은 한층 정리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줄어들 줄 모르는 추모객들의 행렬과 비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권변호사, 청문회 스타, 대권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칭은 '바보 노무현', '승부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인권변호사로 활동, 88년 총선 허삼수 후보를 누르고 정계에 입문해 5공 청문회 스타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후 영달을 누릴 수 있는 삼당합당을 거부하고 '꼬마민주당'에 남아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며 낙선을 거듭하던 모습은 그를 '바보 노무현'으로 기억하게 했다. 청와대에 입성해서도 대통령 최초 탄핵소추안으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고 재역풍으로 다시 주도권을 잡고서는 대연정, 4년 연임제 개헌 등 꿋꿋하게 '바보 노무현'의 행보를 계속했다.

이러한 고집스러움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은 생전 청와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원칙과 결벽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박연차 게이트로 자신의 정치적 강점이자 상징이던 '도덕성'은 무력화됐다. 제작진이 만난 정신과 전문의 역시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원칙과 결벽성이 서거에 이르기까지 강한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했으리라고 분석했다.

행복한 고향마을의 유기농 농부로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했던 그의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서거 전 1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서거 3일전, 통닭을 사들고 노 전 내외를 방문해 얘기를 나눈 초등학교 동창부터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고등학교 동창, 대통령 노무현을 지켜봤던 양정철, 천호선 전 비서관과 정치의 뜻을 함께했던 유시민 전 장관 등 가까운 지인들 역시 노 전 대통령을 찾았다.

제작진은 최근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지인들을 통해 서거 1주일 전 근황과 사건 당일의 일지를 재구성했다.

서거 이후 추모열기로 들끓고 있는 현장과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수 밖에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의 풀스토리를 담을 'PD수첩'은 26일 밤 11시 5분 방송된다.


뉴스팀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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