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견기업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최모씨(35)는 세후 기준으로 월 평균 280만원을 벌지만 저축은 거의 못 하고 있었다. 아파트를 마련하느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장남으로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돕느라 카드론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는 돈만 월 120만원이 넘어 5년 전 가입한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매달 20만원씩 넣는 것을 빼고는 저축할 여력이 없었다.

최씨는 고민 끝에 직장인을 대상으로 재무 상담을 해준다는 한 재무설계 회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재무설계사(FP)는 제2금융권 대출을 은행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하고 한달 130만원에 이르는 소비성 지출을 100만원 이내로 줄일 것을 권했다. 권유를 받아들인 최씨는 한달 원리금 상환 부담을 15만원 줄였고,월 20만원의 적금과 연금보험에 가입해 저축을 늘릴 수 있었다.


◆재산 적을수록 적극적으로 관리하라

재무설계 및 자산관리 서비스는 최소 10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유층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씨의 사례처럼 최근에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중산층 이하를 대상으로 한 재무설계 서비스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산이 많건 적건 자신의 인생 계획에 맞춰 목적자금을 마련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재무설계라고 강조한다. 임계희 파이낸피아 대표는 "'돈도 없는데 무슨 재무설계냐'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돈이 없을수록 체계적으로 재산을 관리해야 모을 수 있다"며 "돈이 없는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재무설계"라고 말했다.

과다채무 등 재정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무 상담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오해라는 지적이다. 김인호 한국FP협회 부장은 "재무 상담은 본인의 재무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재테크 목표를 보다 쉽게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며 "특별한 문제나 계기가 있어야만 상담을 받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상담료 20만~40만원 수준

제대로 된 재무 상담을 받으려면 우선 신뢰할 만한 재무설계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중산층 이하 고객을 대상으로 재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줄잡아 30~40개에 이르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재무설계 상담보다 보험 판매가 주 목적인 독립법인 대리점(GA)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AFP(재무설계사)나 CFP(국제 재무설계사) 등 공인자격증 소지자를 FP로 고용해 재무설계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곳으로는 포도재무설계 파이낸피아 한국재무설계 등이 있다.

이들은 20만~40만원의 상담료를 받고 개인별 재무상태에 맞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컨대 포도재무설계는 기혼자는 15만원,미혼자는 10만원의 기본 상담료에 출장비 등을 더해 평균 20만원의 요금을 받는다. 파이낸피아는 기본 상담료가 30만원이고 상담 내용 및 FP의 전문성에 따라 최고 100만원의 비용을 요구한다. 한국재무설계도 상담 수준에 따라 20만~30만원의 컨설팅료를 받는다. 최근에는 한경와우에셋도 재무상담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평균 36만원의 상담료를 받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무상담을 받으려면 자신의 재무상태에 대해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FP에게 제공해야 한다. 세후 기준 월 평균 소득은 물론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금융자산,투자하고 있는 상품,대출 내역,소비성 지출 현황 등을 모두 알려줘야 정확한 진단을 받고 적절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양재중 포도재무설계 팀장은 "이왕이면 3년 후에 결혼을 하고 5년 후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재무목표까지 제시하면 더욱 좋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재무설계 서비스를 받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고객이 FP의 조언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주는 곳이 좋다. 제대로 실천이 안 되고 있을 경우에는 원인을 파악한 뒤 해결 방안을 제안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도재무설계 파이낸피아 등이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경와우에셋도 상담 고객에게 연 2회의 관리보고서를 제공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상담 서비스를 한다.

◆저소득층 대상 무료 재무상담

저소득층과 저신용자들도 재무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포도재무설계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저신용 계층에 부채 및 재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채클리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6등급 이하이면서 월 소득이 전국 평균(4인 가구 기준 370만5000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이 대상이다. 복지부와 회사 측이 상담료를 부담해 고객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라의형 포도재무설계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가구당 월 평균 60만원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한국FP협회는 서울시와 공동으로 각 구청 자활센터에 있는 노숙자 중 월 10만원씩 희망통장 적금을 불입하는 등 자립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재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재무설계사협의회는 파이낸피아 등 회원사들과 함께 다음 달부터 채무불이행자 등 과다 채무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재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