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의 맏형인 은행들이 경제위기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지난 1분기 전문 신용카드사들이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면서다. 보험업계에선 손해보험사가 생명보험사에 비해 실적이 앞서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계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있다.

삼성 현대 등 5개 전업 카드사들은 지난 1분기 419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1% 감소하긴 했지만 당시 발생한 비자카드 상장 특별이익(3542억원)을 제외하면 순이익이 1년 전보다 48.9% 늘어났다. 반면 은행들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당기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섰지만 순이자마진이 2%대에 그치는 등 수익기반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하나은행은 304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은행권의 이익을 크게 깎아먹었다.

은행과 카드사 간 실적 역전을 단적으로 보여준 회사는 신한금융지주다. 신한은행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737억원으로 전년 동기(2143억원)나 전분기(3576억원)에 비해 훨씬 못미치는 실적을 냈다. 반면 카드업계 시장점유율 1위인 신한카드는 142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처음으로 은행 실적을 앞섰다. 수익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NIM(순이자마진)의 경우 신한은행 단독으로는 1.66%에 그쳤지만 신한카드와 합산하면 2.89%로 높아져 카드가 은행의 실적악화를 메워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가 은행에 비해 '선방'한 이유는 경제위기 여파가 전면적으로 확산되지 않은 탓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은 반면 카드사들은 연체율이 다소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여유가 있다. 또 불황기에는 평상시에 비해 연체수수료 수익이 늘어난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경기침체의 골이 더 깊어지면 약(藥)에서 독(毒)으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한 이익'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체율이 급격히 늘어날 경우 신용카드사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예컨대 생보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지난해 순이익은 1130억원으로 전년 대비 84.2% 급감,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5987억원)에 비해 뒤졌다. 삼성생명은 2007년까지만 해도 7146억원을 올려 삼성화재(4765억원)를 앞질렀다.

이 같은 역전 현상 역시 경제위기 여파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장기 상품을 다루는 생명보험은 경제 위기로 신계약이 줄고 해약이 늘고 있지만 손해보험은 경기침체로 자동차 운행이 줄면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 자산 규모가 큰 생보사는 해외 자산에 많이 투자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크게 받았다. 지난해 3분기(2008년 4~12월)까지 실적만 봐도 생보사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9483억원 급감한 7610억원을 기록했지만 손보사는 2389억원 줄어든 1조208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