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은 가라." 공연무대가 막장드라마에 반기를 들었다. TV드라마 속 불륜과 복수,신파와 출생의 비밀 등 뻔한 이야기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듯 동심을 자극하는 순수작품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1일부터 세 번째 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소나기'(세종문화회관M씨어터),7일부터 두 번째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호암아트홀)과 대학로에서 선보인 연극 '나쁜자석'(악어극장)이 그 주인공.


◆순수했던 첫사랑 불러내는 '소나기'

뮤지컬 '소나기'는 마음 속 깊은 곳의 풋풋했던 첫사랑과 잃어버린 순수함을 살며시 불러낸다.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우리 함께 하는 이 순간/ 말하지 못한 네 마음/ 내 작은 가슴에 담아둘 거야.'주인공 동석이 전학 온 소녀와 조약돌을 나눠 가지며 함께 부르는 노래.시냇물이 함께 흘러내리는 이 노래장면을 보며 첫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뮤지컬 '소나기'는 한국 순정소설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황순원의 원작을 1980년대 시골 고등학교로 옮겨 장면마다 동화책 속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말로 하면 깨질까 두려워 좋아하는 소녀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소년의 마음을 대사의 여백으로 채웠다. 첫사랑에 대한 추억만 있는 게 아니다. 1980년대를 지냈던 한국사의 아픈 기억도 등장한다. 운동권 대학생이 돼 경찰에 쫓기는 동석의 형과 아들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이 애틋하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조용필의 노래와 소풍장면은 경쾌했던 괴짜 동창들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 3~5t 분량의 물이 무대 위로 쏟아지면서 소나기를 연출한 장면은 고되고 힘든 현실을 말끔히 씻어내는 클라이맥스다. 순수한 사랑의 상징으로 나비가 등장해 극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총각선생님 좋아한 시골소녀 '…풍금'

'내 마음의 풍금'은 시간을 더 거슬러 1960년대 시골 초등학교로 돌아간다. 늦깎이 초등학생 홍연이 일곱살 위의 총각선생님을 좋아하는 첫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1987년 발표된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원작으로 드라마와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음악으로 재구성된 사랑의 감정은 순수한 동심과 맞물려 더 와닿는다. '나비 한 마리 내 어깨 위에/ 나비 한 마리 살며시 앉았네/ 가벼웁고 소리도 없어/ 앉은 줄 몰랐네'라며 주인공 동수가 풍금소리와 함께 부르던 극 초반의 노래는 마지막 무대에서 '나비 한 마리 스쳐간 자리/ 꽃이 피었네/ 내 마음 깊은 곳/ 조그맣고 소리도 없어/ 봄이 온 줄 몰랐네'라는 사랑의 노래로 바뀐다. 바람소리를 내며 삐그덕대는 풍금소리가 주는 울림은 어떤 악기보다 크다.


◆청춘의 꿈과 우정 그린 '나쁜자석'

'우리'가 될 수 없기에 더 애틋하고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판타지 연극.제목 '나쁜자석'은 서로 밀어내기만 해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자석을 인간에 비유했다. 9살난 단짝 친구들 원석,민호,은철,봉구.네 친구의 20년에 걸친 우정과 반목을 통해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는 인간관계를 그렸다. 주인공 원석이 만든,극중극 형식으로 등장하는 두 편의 동화와 인형극은 잠시 잊었던 어린 시절의 동심을 불러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