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웰링턴.두 사람의 대결에서 웰링턴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는 나폴레옹의 적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워털루에서의 승리는 이후 유럽을 변모시켰다.

싹트던 혁명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다시 보수의 시대로 돌아섰다. 코르시카섬에서 온 키 작은 나폴레옹과 영국 귀족 아들 웰링턴의 대결은 프랑스와 영국의 대결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혁명과 보수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날 그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했더라면 세계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케네디와 닉슨.대통령 자리를 향한 두 사람의 대결은 미국의 현대사를 바꾸었다. 정치 입문 시절 둘은 서로를 존중했지만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면서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행동도 판이했다. 케네디가 전형적인 바람둥이 기질이었다면 닉슨은 공부벌레 스타일이었다. 두 사람의 대결에서 케네디가 승리했지만 그는 저격당했고,닉슨은 나중에 꿈을 이루었지만 불명예를 안고 퇴진했다.

미국의 역사저술가인 조셉 커민스는 《라이벌의 역사》에서 23쌍의 역사 인물 이야기를 들려주며 "개인적인 라이벌 관계가 사회,전쟁,국가,크게는 전 세계의 윤곽을 변화시킨다"며 "이 라이벌들의 모든 것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적당한 라이벌 관계는 발전의 자극제가 되지만 지나치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46명의 관계도 그랬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경우를 보자.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는 왕이자 전사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승산이 있든 없든 미친듯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보다 20년 연상인 다리우스 3세도 마찬가지였다. 불안정한 왕실에서 왕위에 오른 두 통치자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그러나 BC 4세기의 무력외교 시대에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4년에 걸쳐 세 번이나 큰 전투를 벌였고 알렉산드로스가 승리했다. 이후 서구문명의 중흥을 이끈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됐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와 스웨덴 왕 카를 12세의 대결도 세계 지도를 바꿔놓았다. 핀란드만의 항구 지배권을 두고 13세기부터 이어져 온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결은 18세기에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다.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4세와 폴란드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스웨덴을 공격하기 위해 비밀 동맹을 맺고 표트르 대제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마침 '잃어버린' 발트해 항구를 되찾고 싶었던 표트르 대제는 이들의 요청에 응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20여년간 이어졌고 1709년 폴타바전투에서 패한 스웨덴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는 유럽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를 극동 사령관직에서 해임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저자는 라이벌의 관계가 표면적으로는 대결 형태를 띠지만 내면을 분석하면 훨씬 복잡해진다면서 때로는 이질적이고 때로는 닮은꼴인 이들이 인류와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꿨는지 수많은 팁,관련 정보와 함께 보여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