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는 지나갔으며 작은 파도가 오더라도 외환위기는 없다. "

양동호 국민은행 자금본부장을 비롯한 은행 자금담당 임원들의 한결 같은 진단이다. 외화유동성 우려는 사실상 소멸했다는 얘기다. 국제금융시장이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는 데다 한국이 상당 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함으로써 '달러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라졌다.

◆'○월 위기설' 이제 없다

작년부터 연초까지 분기마다 외화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졌었다. 3월 위기설,9월 위기설,12월 위기설,또다시 3월 위기설 등이었다. 전 세계적인 디레버리징(자산감축)에다 일본 및 중국계 은행의 결산에 따른 외화차입금 회수에 대한 걱정이 겹친 결과였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는 이 같은 위기설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가장 큰 배경은 대규모 무역흑자다. 무역수지는 올 1월까지만 하더라도 36억3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2월 29억3000만달러,3월 42억9000만달러로 흑자로 돌아선 뒤 지난달엔 60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무역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은행으로 흘러들어가 은행의 외화자금 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대규모 무역흑자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무역수지를 좌우하는 국제유가가 지난해보다 배럴당 50달러 낮게 형성돼 있는 데다 2006년 수주한 조선의 수출액이 올해 70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양 본부장은 "지난해 9월 거래를 끊었던 외국 은행들이 거래 재개를 요청하고 있으며 새롭게 외화를 주겠다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이 올 1분기에 전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자 이 같은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으며 외국인의 한국주식 매입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거래되는 한국물의 바로미터인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가산금리)도 작년 10월 600bp(1bp=0.01%포인트)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5년 만기 외평채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5일 뉴욕시장에서 210bp까지 하락,조만간 100bp대에 접어들 태세다.

◆"긴장 유지해야" 지적도

하지만 경계감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특히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긴장을 풀지 말 것을 은행들에 주문하고 있다. 도보은 금감원 외환총괄팀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보면 안 된다"고 밝혔다. 도 팀장은 △은행들의 외화차입은 원활하지만 금리가 여전히 높고 △만기 1년 이상 중장기 차입은 여전히 어려우며 △국제금융시장에 변수가 여럿 남아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은행들이 외화자금 관리를 당분간 보수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병찬 한은 국제국장도 "아직 국제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미국 은행들의 스트레스 테스트(경제사정 악화에 따른 자산건전성 시험)에 따른 불안감 △GM 크라이슬러 등의 처리 △동유럽의 위기 확산 여부 등을 꼽았다. 안 국장은 "이 같은 변수가 국내 외화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이 작년 리먼 사태 직후에 비해선 크지 않겠지만 위기가 끝났다고 봐선 곤란하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양 본부장 역시 경기가 회복되면 국제유가가 다시 뛸 가능성이 있고 그 여파로 무역흑자가 줄어들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염려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