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기관 이견…"정기국회 처리"

한국은행의 기능을 강화하는 한은법 개정안이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은법 개정안은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고 제한적인 직접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정무위원회 등 관계 기관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사자 간 견해차가 큰 상황이라 재정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법제사법위원회나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한은법 개정은 전반적인 감독체계 개편과 맞물려 논의될 전망이다.

재정위는 관계 기관 간 이견을 조율하고 9~10월 정기국회 때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직접조사권에 `발목'
법개정 논의는 기존의 한은법으로는 한은이 위기에 대처하기에 미흡하다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금융위기 이후 한은의 금융안정 기능이 부각됐지만 정작 한은법은 `물가안정'만 정책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보니 적극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정책목표에 `금융안정'을 추가했다.

이러한 금융안정의 중요성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문제는 `책임'을 강화하는 것에 맞춰 `권한'으로 부여한 직접조사권이다.

기존에도 한은은 금감원에 공동검사를 요청할 수 있지만 두 기관의 `불협화음'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과 중복감독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긴급한 상황에서 공동검사가 불가능할 때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했지만, 한은으로서는 은행 감독기능을 통합 금융감독기관에 넘긴 1997년 이후 12년 만에 직접조사권을 부분적이나마 되찾을 기회였다.

감독 당국은 사실상 중복 감독으로, 통합금융감독 기구가 있는 현행 감독 체계에 근본적으로 어긋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은이 직접검사권을 갖게 되면 피감기관인 금융회사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우리나라처럼 통합 감독기구가 설치된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공동검사권을 가진 사례는 없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재정위에 참석해 "중앙은행과 정부의 관계가 첨예한 대립이나 소모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한은법 개정에)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정기국회서 처리 추진
한은법 개정은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감독체계 개편과 맞물려 큰 틀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나 총리실 직속으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올해 정기국회까지 감독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금융정책과 감독, 집행 업무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으로 분산돼 있어 금융시장의 현안에 신속하고 종합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야당에서는 경제부총리를 부활시켜 재정부가 국내외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영선 국회 정무위원장은 27일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장을 단일화할 수 있는 내용의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에 제한적이나마 직접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감독체계 개편 논의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내용도 관계 기관의 입장을 반영해 일부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위 법안심사소위의 김종률 위원장은 "한은이 지급결제 참가기관에 대한 서면.실지조사를 하도록 규정하는 부분에 대해 재정부와 금감원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제외하고 시행 시기를 법 공포 이후가 아니라 내년 1월로 늦추는 방안을 제출하겠다"며 수정안을 제안했다.

윤증현 장관은 "(한은법을 포함한 금융감독 체계 관련 법안을) 정기국회 때까지 내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