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맺힌 전우를 찾아 주세요."

지난달 중순 포항 해병1사단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찾아달라는 한 `노병'의 애절한 목소리였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1~2월 기간에 사투가 벌어졌던 경북 영덕 청송지구 전투에 해병으로 참전했던 탁학명(78.해병3기)씨.
탁씨는 "당시 전투에서 해병 소대장을 포함한 전우 5명이 북한군에 의해 장기가 나올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뒤 알몸으로 버려진 것을 발견하고 시신을 가매장했다"며 "철수를 하면서 매장한 것이라 주변 나무를 잘라 표식을 해둔채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탁씨의 요청에 따라 해병대는 즉각 위치 추적에 나섰고 해당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청송군 팔각산 골짜기에서 유해 4구를 발견했다.

1구는 이미 수습된 상태였다.

탁씨의 증언대로 유해 주변에서는 아무런 유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북한군이 전리품으로 군복까지 모두 가져가 버린 것. 하지만 반세기가 넘게 차디찬 바닥에 버려졌던 자랑스런 노병들은 따뜻한 고향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해병대는 지난달 9일부터 지난 24일까지 해병대 자체로는 최초로 포항에서 실시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유해 79구와 유품 827점을 발굴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지역은 1950년 8~9월 기간에 국군 3사단과 북한군 5사단의 치열했던 이른바 포항 안강지구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국군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국방부는 앞서 이 곳을 포함한 포항지구에서 유해 57구와 유품 1천841점을 발굴한 바 있다.

6.25전쟁 당시 해병 전사자는 1천822명이며 이 중 현재까지 275구의 유해를 못찾고 있다.

이번에 유해발굴이 이뤄진 포항지역에서는 24명이 숨졌다.

유해발굴 작업에는 해병대 상륙지원단 상륙지원대대 장병 186명과 국방부 유해발굴단 전문요원 21명이 참여했으며 당시 탁씨처럼 전투 참전자의 제보와 인근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포항지역 흥애읍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금까지 포항 지역에서는 국군 57구의 유해와 1천841점의 유품이 발굴됐다.

해병대는 이번 발굴에 이어 다음 달 6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해병대 2사단 장병 86명을 투입해 역시 격전지였던 김포 용강리와 조강리 지역, 강화 교동도 및 송해면 하도리 지역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선배 해병들의 유해를 한 구도 남기지 않고 찾아내 그 분들의 명예를 반드시 되찾아드리겠다"고 말했다.

군은 2000년부터 시작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작년까지 국군 2천230구, 유엔군 11구, 북한군 418구, 중공군 196구 등 모두 2천855구를 발굴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