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국 기업은행 PB고객부 팀장은 최근 거액 자산가들의 자린고비 같은 생활습관에 다시 한번 놀랐다. 수십억원대의 금융자산을 가진 한 고객이 오 팀장에게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대신 내 달라고 부탁하면서 반드시 납부기한 마지막 날에 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돈이 하루라도 계좌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0.1%라도 이자를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 팀장은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지출내역을 꼼꼼히 따지고 단 1원도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며 "이 같은 습관이 큰돈을 모을 수 있는 기초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재테크의 귀재'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재테크의 귀재'이기 이전에 '절약의 귀재'였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50년 전 구입한 집에 살면서 9년 된 차를 타고 다니고,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단 3켤레의 구두를 30년 동안 신었다.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재테크 전망이 불투명한 때일수록 섣부른 투자보다는 낭비를 줄이고 새는 돈을 막으면서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신용카드 지혜롭게 쓰기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부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신용카드는 외상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쉬운 방안은 아니다. 카드를 쓰되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신용카드를 통해 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우선 할인 및 포인트 적립 혜택이 많은 카드를 쓰는 것이 있다. 꼭 써야 하는 항목이나 씀씀이가 큰 항목에 대해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카드가 있다면 이를 통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좋다.

전자제품처럼 고가의 물건을 살 때는 2~3개의 신용카드로 나눠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TV를 사는데 한 달에 5만원 한도 내에서 전자제품을 할인받을 수 있는 A카드와 B카드가 있다면 100만원을 50만원씩 끊어서 결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A카드로 5만원,B카드로 5만원이 각각 할인돼 총 10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로 할부 구매를 하는 경우에는 할부기간에 따라 수수료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둬야 한다. 카드사들은 일정한 구간을 정해 놓고 할부기간이 길어질수록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따라서 해당 카드사의 수수료 책정 방식에 따라 할부 구간별 마지막 회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만약 2~3개월,4~6개월,7~9개월로 수수료 구간이 나뉘어 있다면 4개월보다는 3개월,7개월보다는 6개월 할부를 이용하는 것이다.

◆매달 50만원만 입금하면 수수료 면제

필요한 돈을 평일 낮시간에 찾아 놓지 않았다가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면 수수료를 물게 된다. 가급적 수수료를 물지 않는 시간에 은행 거래를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수료를 면제받고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은행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은행들은 고객의 거래 실적에 따라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고객에 대해서는 금융 수수료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급여이체를 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자동화기기와 인터넷뱅킹,타행이체 등의 수수료 면제 혜택이 제공된다. 그런데 은행이 급여이체 고객을 분류하는 기준을 잘 활용하면 본인 외에 가족까지 혜택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보통예금통장에 매달 50만원 이상 입금되는 것을 급여이체 고객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다른 통장으로 50만원을 송금하면서 입금자 표시란에 '급여'라고 써 넣기만 하면 입금통장의 명의자도 수수료 면제 혜택을 받는다. 급여이체 고객으로 간주되면 수수료 면제 외에 예 · 적금 및 대출금리와 환전 수수료 우대혜택까지 얻을 수 있다.

◆가계 재무제표 만들기

지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가계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가계 재무제표는 매일 수입과 지출내역을 적는 가계부와 가계의 전체적인 자산현황을 나타내는 대차대조표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가계부는 일간 또는 월간 단위의 수입과 지출을 보여줄 뿐 가계의 재무상태를 나타내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대차대조표가 필요하다.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면 단순히 얼마를 벌어 얼마를 쓰는지 외에 지금 얼마의 돈을 갖고 있고 앞으로 얼마의 돈을 갚아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하루 단위의 수입과 지출은 가계부에 기록하고 대차대조표에는 한 달 단위의 재산 변동 상황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대차대조표를 처음 기록할 때 은행 예금이 5000만원 있고 대출이 3000만원 있다면 예금은 자산과 자본항목에,대출은 자산과 부채항목에 각각 적는다. 자산 8000만원,자본 5000만원,부채 3000만원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언제나 자산은 자본과 부채의 합이라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그후 한 달간 적금을 100만원 넣고 대출을 50만원 갚았다면 그 다음 달 대차대조표에는 자본이 5100만원으로 늘어나고 부채는 295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주식 펀드 부동산 등의 가격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산은 매달 변화된 가격을 대차대조표에 적어야 자산 변동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