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에 '금융안정' 추가 공감대

국회가 한국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심의에 들어간 가운데 한국은행에 금융기관 직접 조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10개가 발의된 한은법 개정안들은 대체로 한은에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되 직접 조사권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1일 오전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열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 `경제위기와 한국은행 역할' 토론회에서는 한은의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조사권 부여에 대해서는 찬반이 뚜렷이 갈렸다.

한은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한은 검사권 부여 `공방'
토론의 초점은 한은에 단독 검사권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가진 금융감독원과의 공동검사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해법에는 견해차를 보였다.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의 이건호 교수는 "한은에 사실상 단독 검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론적, 현실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애초 한은에 단독 검사권을 주지 않은 것은 중복 검사로 인한 금융기관의 과중한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검사권 문제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의 자료 제출 요구권과 공동검사 요구권만으로는 지급결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위한 자료 확보가 불가능하거나 그 효율성이 현저하게 훼손된다는 것이 입증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한은의 감독기능 확장에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지금도 한은은 필요할 경우 감독기구에 공동 검사를 요청할 수 있고 감독기구는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은의 검사권 논란은 법 조항의 문제라기보다는 금감원과 한은 간 `마찰'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최창규 명지대 교수는 "현행 한은법상 지급결제 관련 자료요구 대상이 한은 금융망에 참가하는 기관 등으로 제한돼 있어 긴급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대상을 확대하고 한은에 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과거와 달리 금융위기가 은행 외에 비은행 금융기관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중앙은행이 비은행에 대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종률 기획재정위 법안심사소위원장과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법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종률 법안심사소위원장은 "소위원장의 자격이 아니라 국회의원 개인으로서 제한된 범위에서 한은에 직접 검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금감원은 미시적 금융기관을, 한은은 거시적인 금융시스템을 각각 감독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 "총재 임명, 국회동의 거쳐야"
`물가안정'만을 규정한 한은법 1조에 `금융안정' 목적을 명시적으로 추가해야 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전성인 교수는 "현재 법조항이 없어 금융안정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한은은 금융위기 이후 광범위한 금융안정 기능을 수행했다"며 "다만, 한은법 1조만 보면 한은이 물가안정만 하는 것으로 돼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지배구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국회 동의를 거쳐 한은 총재를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현재 이러한 의견을 담은 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최창규 교수는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재 임명 절차에 국회 동의 과정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건호 교수도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한은의 독립성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윤창현 교수는 "현재 한은법 개정 논의는 금융안정 기능 등 위기관리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금융통화위원 구성과 같은 지배구조 문제로 논의를 넓혀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종률 소위원장은 "이번에는 금융안정 부분에 중점을 둬 지배구조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해 국회 심의에서 지배구조 논의가 보류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