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잉유동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은 21일 "유동성 환수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달 9일 기준금리를 2.0%로 동결한 뒤 발표한 통화정책방향에서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기의 과도한 위축을 방지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운용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통위원들은 아직 경기가 침체해 있고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바꿀 경우 경기가 채 살아나지 못하고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 금통위원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의 통화량은 정책금리 기준(2.0%)에 적정한 수준"이라며 "통화를 환수하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통화량을 조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800조 원이라고 하는데, 부동자금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며 "이들 자금 역시 모두 투기화해 주식시장, 강남 부동산에만 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800조 원은 분명히 과잉유동성"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윤 장관이 말한 `800조 원'이 3월 말 기준 실세요구불 예금(67조 원), 수시입출금식 예금(192조 원), 시장성예금(120조 원), 머니마켓펀드(118조 원), 종금사 잔액(25조 원), 증권사 고객 예탁금(13조 원)과 1년 미만 정기예금 등을 더한 수치로 추정하고 있다.

B 금통위원은 "한국은행이 얼마 전에 올해 성장률 전망을 -2.4%로 제시했는데, 곧바로 통화 환수 얘기를 꺼낼 수가 있겠느냐"며 "과잉유동성을 환수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면 정말 생뚱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C 금통위원도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때를 대비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한 달 상황을 가지고 경기를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지금 경기가 상승 기조로 바뀌었다든가 바닥을 찍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한은은 통화량을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하고 있으나 환수하고 있지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부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는 단기 유동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D 금통위원은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헛바퀴를 돌며 자산가격 인플레를 촉발하지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하지만 갑자기 통화량을 조이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인플레가 생기지 않도록 (금통위원들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E 금통위원도 "단기 유동성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동성을 바로 축소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소위 말하는 `돈맥 경화' 현상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유동성 환수 논의는 시기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경기 위험이 (유동성 위험보다) 훨씬 더 큰 상황이고 당국의 정책 방향성도 그 쪽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황인성 연구원은 "지금도 일부 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시중에 풀린 돈이 기업이나 실물 쪽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물길을 터주는 방안을 논의할 때이지, 유동성 환수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박용주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