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피임약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월경전 불쾌장애'와 중등도 여드름 치료 효과를 입증한 새로운 약이 나와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이엘쉐링제약이 최근 출시한 '야즈(Yaz · 사진)'가 그 주인공.비록 기존 성분이긴 하지만 약의 배합비율과 용법을 바꿈으로써 다양한 효과를 내는 '약의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 경구 피임약은 자궁내막 증식과 임신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되 실제로는 새로운 임신을 방해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난포호르몬(에스트로겐)과 자궁내막증식을 억제하고 배란을 지연시키며 월경을 촉진하고 수정란의 착상을 막는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이 복합된 제제다. 난포 성숙과 배란을 억제하고 자궁의 점액을 끈끈하게 만들어 정자의 운동을 억제함으로써 피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야즈는 황체호르몬의 일종인 드로스피레논 3㎎과 난포호르몬의 일종인 에치닐에스트라디올 20mcg(마이크로그램)이 함유된 제제로 24일간 복용하고 나머지 4일은 위약을 복용하는 세계 최초의 '24/4 용법'의 피임약이다.

이에 비해 같은 회사에서 나온 기존 피임약인 '야스민'은 드로스피레논 3㎎과 에치닐에스트라디올 30mcg이 함유된 제제로 21일간 복용한 후 7일간 휴약하는 '21/7 용법'의 약이다. 이런 호르몬의 배합과 용법 차이 때문에 야즈는 야스민에 비해 체내 호르몬 변화 폭을 감소시켜 전체 생리주기 동안 안정된 호르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월경전증후군의 하나인 월경전불쾌장애를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게 된다.

월경전 불쾌장애란 월경을 앞두고 에스트로겐은 줄어들고 프로게스테론이 늘어나는 등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짜증 신경질 우울증 등 정서적으로 예민해지는 반응을 보이며 심하면 충동적인 도벽(盜癖)이나 자살을 저지르는 정신과적 문제다. 대체로 생리 시작과 함께 증상이 호전된다.

지난해 10월 바이엘쉐링제약과 건강전문조사기관인 파맥스오길비헬스월드가 3개월간 최소 두 번 이상의 월경을 경험한 15~49세 국내 가임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34%가 월경전증후군을 겪고 있다. 또 이들 중 79%는 짜증 · 신경질(83%),피로 · 무기력증(74%),급격한 기분변화 및 일상생활에 대한 흥미 감소(각 56%),관절 · 근육 · 허리통증(78%),복통 · 복부통증(74%) 등의 감정적 육체적 증상을 겪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전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여성 중 의사를 방문한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최두석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이번 조사결과는 한국 여성들은 월경전증후군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질환의 심각성을 간과하거나 신체적 증상 위주로 해결 방안을 찾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월경전증후군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전문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먹는 피임약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야즈는 염증성,비염증성 여드름 수를 현저히 감소시켜 중등도의 여드름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됐다. 기존 경구피임약 겸 여드름 개선제인 바이엘쉐링의 '다이안느'는 황체호르몬의 일종인 초산사이프로테론(2㎎)과 에치닐에스트라디올(35mcg)이 배합된 것이다. 야즈와 다이안느는 성호르몬의 기초물질이 되는 안드로겐에 대적하므로 안드로겐 과잉에 의한 여드름이나 다모증,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비세균성 여드름에 효과적이다.

한편 같은 회사의 '안젤릭'은 난포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헤미하이드레이트(1.033㎎)와 드로스피레논(2㎎)이 복합된 여성폐경기증후군 치료제다. 드로스피레논은 다른 황체호르몬에 비해 체내 수분 저류에 의한 부종이 덜하고 두 호르몬은 체내의 천연 호르몬과 가장 유사해 폐경증후군 치료에 따른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여성호르몬이 들어있는 치료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됐다하더라도 자궁내막암 유방암의 발생 위험을 높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심근경색 뇌졸중 혈액응고 하지심부정맥혈전증을 악화 또는 초래할 수 있어 치료에는 정기적인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