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을 꼽으라면 강영우 전 미국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교육학 박사 · 65 · 사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장애인,이민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아들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워 미 주류 사회에서도 부러워하는 집안을 일궜다. 7년간 부시 행정부에서 차관보로 활동하다 지난 1월 퇴임한 그는 최근 방한, 다음 달 15일까지 국내에 머물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강 전 차관보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장남 폴 강(한국명 강진석 · 35)은 미 명문 사립고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후 조지타운대 의대 안과 교수로 근무 중이며 워싱턴안과교수연합회(UOCW) 회장 직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소비자협회 관련 기관에 의해 미국 최고의 안과 의사로 뽑히기도 했다.

둘째 크리스토퍼 강(한국명 강진영 · 변호사 · 32)은 오바마 정부의 입법관계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형과 마찬가지로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를 거쳐 1995년 시카고대에 입학,학교에서 '지역 봉사센터'를 창립했다. 그때 센터를 지도한 사람이 미셸 오바마 당시 대외관계 담당 부학장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버락 오바마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과도 친분을 쌓았다. 2002년 상원 법사위 입법보좌관으로 의회에 들어가 29세에 최연소 미 상원 본회의 수석 법률보좌관으로 승진했다. 오바마의 대선 자금 모금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둘째는 아버지가 퇴임하는 날 대를 이어 백악관에 입성했다. 공화당원 아버지와 민주당원 아들 간에도 '정권 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이처럼 두 아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운 비결은 뭘까.

"아이들에게 먼저 삶의 비전을 심어 줬어요.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이나 에드워드 케네디같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 줬죠.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거든요. " 역할 모델이 좋으면 성공의 지름길을 달리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두 아들에게도 롤 모델을 정해 줬다.

"눈뜬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불평하던 첫째에게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심어 줬다. 덕분에 큰아들은 성장 후 "눈먼 아버지가 눈뜬 내 인생을 이끌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워 주기 위해 어린 두 아들을 진주 강씨 사당에 데려가 "너희들이 장차 미국에서 진주 강씨의 중시조가 돼라"고 주문했다는 일화도 들려 줬다. 그는"둘째가 백악관에 입성한 건 실력(Competence),인격(Character),헌신(Commitment)의 3C를 갖췄기 때문"이라며 "한국에도 3C를 갖춘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4세 때 아버지를 잃은 강 전 차관보는 이듬해 축구 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다. 이 충격으로 어머니는 사망했고 누나는 생업을 위해 봉제공장에 입사했지만 16개월 만에 과로로 숨졌다. 이런 절망 속에서도 그는 19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글=최규술 · 김일규/사진=양윤모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