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정책 혼선이 도(度)를 넘었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주요 정책이 당 · 정 간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 앞서 당 · 정 간 협의를 거친 사안에 대해 뒤늦게 여당에서 문제를 제기해 정책이 표류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컨트롤 타워가 없는 한 이런 혼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 · 정 간 조율 난맥상

지난 3월 당 · 정 협의를 거쳐 정부가 발표한 1가구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 제도 폐지 법안이 한나라당 내부 반대에 따라 사실상 유보된 게 당 · 정 간 정책 혼선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나라당은 20일까지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무기명 여론조사를 벌여 당론을 다시 도출하기로 했지만 이미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시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여당 원내지도부의 의견이 엇갈리고 의원총회에서 반대 의견이 쏟아지면서 '정부 정책의 뒤집기 여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16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또다시 부동산 버블이 올 우려가 있다"며 양도세 폐지에 완강히 반대했다. 반면 임태희 정책위 의장은 다른 라디오방송에서 "과도한 중과세로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부동산 시장을 죽이는 세제"라며 첨예하게 맞섰다.

비정규직법의 경우 정부가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의무고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냈지만 당은 역시 정부안 수용 불가 입장만 확인한 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법 시행의 '한시적 유예'에는 대체로 공감했으나 유예기간을 놓고 홍 원내대표가 '4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일부 의원들은 '2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금융안정기금 설치 방안은 정부와 상임위 간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한국산업은행 민영화로 새로 발족하는 정책금융공사에 수십조원(규모 미정)의 금융안정기금을 둘 계획이다.

하지만 고승덕 의원 등 국회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이를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으려는 편법으로 보고 있다. 공적자금의 경우 운용기관(공적자금관리위원회) 인사에도 국회가 관여하지만 정책금융공사 산하의 금융안정기금은 국회가 사후 보고만 받는다.

한국은행법 개정안과 4대 보험 통합징수기관 결정 문제 등도 정부와 당 지도부 또는 해당 상임위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변호사법 갈등 임시 봉합

변호사시험법을 두고도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정책의총에서 법사위가 보완한 원안을 통과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대신 반대 측이 요구했던 예비시험법 도입은 2013년에 재논의하는 것을 부칙으로 넣기로 했다. 사실상 임시 봉합이다. 당장 그동안 원안에 반대해온 의원들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강용석 의원은 "예비시험 도입을 골자로 한 수정안에 (의원) 90명 이상이 찬성했다"며 "법사위 원안이 나온 것을 보고 수정안을 제출할지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율사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조직화할 경우 본회의에서 원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태희 의장은 "의원들 간에 충분히 토의하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지만 문제는 '당 · 정 협의→정부 발표→여당 내 반발→정책 혼선'이라는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권 전체가 각종 정책에서 거중 조정이 안 되고 난맥상을 보이면서 그동안 '정책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조해온 청와대의 입장도 무색해졌다.

이준혁/김유미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