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불황이 즐거운 지방중소도시들이 있다. 유독 이들 도시에만 기업들의 투자가 쇄도해서다. 약속했던 투자도 없던 일로 하는 바람에 전전긍긍하며 경기탓만 하는 다른 도시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경북 상주,전북 익산, 강원 춘천 등지는 그동안 모두 특색없는 중소도시들이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속에서도 투자가 몰리면서 산업도시로 급부상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이들 도시에는 사통팔달의 교통인프라가 구축된 것이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땅값이 저렴하고 규모있는 배후도시를 끼고 있는 등 풍부한 인력공급원을 갖추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해당 지자체들도 보다 적극적인 기업지원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지금이 아니면 갈수록 투자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조바심을 낼만한 조건들이다.

15일 오후 경북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들녘. 상주~청원고속도로 남상주 IC부근에 130만㎡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청리지방산업단지에는 요란한 불도저소리와 함께 덤프트럭들이 쉴새없이 오가고 있다. 10년전 산단조성이 시작된 이래 참여업체들의 투자철회로 공사가 중단된 지 4년만의 변화다. 이곳 산단은 최근 10개업체가 잇따라 입주신청을 하면서 분양이 마감됐다. 웅진폴리실리콘이 2010년 완공을 목표로 1조5000억원 등 모두 10개 기업에서 2조5000억원을 투자키로 하면서 산단 기반공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30만㎡규모의 교통안전체험연구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인구 11만의 전통농업도시였던 상주가 투자적지로 떠오른 것은 ‘고속도로’ 덕택이었다. 지난 2004년 중부내륙고속도로, 지난해말 상주~청원고속도로가 개통된 이래 상주~영덕,상주~영천고속도로가 신설될 예정이다. 그렇게되면 경부,중앙,88,구마,영동,대구~포항간 고속도로와 연결돼 전국 어디든 2시간내에 갈 수 있는 교통망을 갖추게된다. 상주시 기업유치팀 전부엽과장은 “상주가 교통요충지로 급부상하면서 기업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며 “기업모시기에 올인하는 타 지자체와 달리 지금도 10여개 업체가 공장용지만 조성되면 입주하겠다며 줄을 서 있다”고 말했다. 공장용지도 최근 오름세를 타면서 3.3㎡당 30만원,주변지역은 20%가량올라 10~15만원선에 거래되는 등 땅값이 저렴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상주시는 공장용지확보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공검면 공검산단(257만8000여㎡)과 공성산단(99만1000여㎡)을 2012년까지 조성하는 한편 함창과 화서에 제2농공단지를 개발하고 현재 가동중인 5개 농공단지(66만6000㎡)는 대폭 확장키로 했다.

70년대 마산과 함께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됐다 수십년째 성장이 멈춰버린 전북 익산시도 기업들의 투자러시로 요즘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남들이 투자유치 부진으로 고전했던 지난해 87개업체, 1861억원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투자업체 중 익산일반산단에 태양광발전기 잉곳과 웨이퍼공장을 건립한 넥솔론㈜은 올해 3억8600만달러를 수출할 계획이며 수주액만 5조4000억원에 이른다.

왕궁농공단지에는 연매출 2800억원규모인 국내굴지의 농기계제조업체인 동양물산이 경남 창원에서 옮겨와 오는 10월 완공목표로 공장을 건립중이다. 이밖에 얀마농기코리아, 삼덕기공, 피엘티 등 기계,신재생에너지 관련업체 등이 속속 익산에 둥지를 틀며 과거 사양산업으로 치부되오던 보석세공,석재,섬유산업위주의 지역 산업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올들어서도 ㈜쿼츠테크(태양광발전소재), 대정이엠㈜(리튬전지) 등 4개업체가 투자를 약속했다. 익산시 투자유치팀 진운섭 실무관은 “지난해 유치돼 현재 공장을 착공하거나 가동중인 업체들이 올해만 1200여명의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등 유치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올해는 불황이지만 유치목표를 100여개업체로 지난해보다 늘려잡아둔 상태”라고 소개했다.

익산시가 이처럼 투자유치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통팔달의 교통여건과 저렴한 공단용지가격,그리고 시의 기업지원시스템 등에서 비롯된다. 호남·서해안·익산~포항간 고속도로,군산~대전·전주~군산간 고속화국도 등의 도로망과 호남·전라·장항선의 철도,군산공항 등의 거미줄같은 교통망이 형성돼있고 무엇보다 대규모 국토개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새만금지구와 인접해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공장용지도 3.3㎡당 30만원안팎인데다 공장설립에 따른 설립지원서비스가 시스템화된 것이 자랑이다.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오는 8월 개통되고 경춘선 전철복선화사업이 내년 말까지 마무리되는 강원도 춘천시는 서울까지의 소요시간이 1시간30분에서 30~40분대로 줄어들게된다. 수도권에 본격 편입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1, 2년 새 한화제약,더존다스,NAVER연구소,ISS(미국 바텔연구소·유유제약 합자) 등의 굵직한 업체들이 춘천에 입성하고 있다.

최근 준공된 춘천시 외곽의 거두농공단지도 15개 필지 가운데 3개 필지만 남겨 놓고 모두 분양됐다. 요즘도 기업들의 입주문의가 끊이지 않아 춘천시는 이들 농공단지에 청정 정보기술(IT)·생명공학(BT)·바이오업체를 선별 입주시킨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이처럼 기업과 인구가 몰리면서 춘천은 인구가 오는 2020년에는 지금의 27만명에서 44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도시들이 메트로 산업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전남대 박광서교수(경제학부)는 “항구적인 산업도시의 기반을 갖추려면 교육과 문화 의료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정주기반이 조성돼야 하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R&D 클러스터와 규제완화 등을 통한 기업하기 좋은 여건조성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춘천=백창현,상주=신경원,익산=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