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9일 미량의 석면이 들어 있는 것으로 우려되는 의약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그동안 입을 통해 섭취되는 의약품 중 석면은 위해성 문제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해당 의약품의 판매금지 조치를 미뤄오다가 석면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결국 '석면 의약품'을 모두 퇴출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석면 파동으로 정부는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미리 능동적으로 찾아내지 못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 석면 함유 여부에 둔감했던 제약사들도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적잖은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

◆영세 제약사 타격 클 듯

이날 공개된 석면 우려 의약품 목록을 보면 동아제약 한미약품 중외제약 광동제약 국제약품 일양약품 동국제약 보령제약 등 유명 제약사가 포함돼 국민의 충격이 컸다. 구주제약 경동제약 드림파마 한림제약 하원제약 휴온스 등 중견 제약사와 상대적으로 일반인에게 생소한 대우제약 등 다수의 군소 제약업체도 많은 품목이 미량의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제약사의 제제 담당 임원은 "석면 의약품목 중 대형 제약사보다는 하위권 중견 제약사나 영세 제약사의 제품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영세 제약사는 저가 탤크를 구입해 쓰다가 무더기로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 제약사의 석면 함유 제품은 주로 영세업체에서 위탁받아 생산한 것"이라며 "문제가 된 덕산약품공업의 탤크는 ㎏당 780원이고 석면이 없는 것으로 조사된 일본산 탤크는 ㎏당 1500원 선이지만 제약사당 탤크의 연간 소비량이 100㎏을 넘지 않아 제약사가 경비 절감 차원에서 저가 탤크를 썼다기보다는 석면의 혼입 및 위해 가능성에 부주의한 측면이 큰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동국제약 관계자는 "그동안 인사돌 생산에 석면 문제가 없는 탤크를 써오다가 지난 2월 말 공급선을 덕산약품공업으로 바꿨다"며 "비록 석면 함유 탤크로 제품을 생산했지만 아직 시중에 유통된 물량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식약청의 조치에 따라 석면 함유 의약품을 다수 생산,판매해온 제약사들은 기존 제품의 회수와 폐기,몇 달간의 영업 중단,석면 없는 제품의 신규 생산 등으로 수억~수십억여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선제적 위해물질 대응 부재

윤여표 식약청장은 이날 "석면이 함유된 탤크 문제로 염려를 끼쳐드려 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며 "다양한 자문 결과 의약품에 함유된 미량의 석면은 먹어서는 위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위해물질은 미량이라도 먹어서는 안되며 국민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도 이날 관계 부처회의를 열고 탤크 수입 시 석면 함유 여부를 검사한 뒤 석면 함유 탤크의 국내 반입을 즉시 차단키로 했다. 의약품과 화장품의 경우는 유통되는 원료의 석면 함유 여부를 검사키로 했다. 지식경제부는 이미 조치가 내려진 화장품 의약품 외에 추가로 고무제품(콘돔 풍선 고무장갑 등) 종이류 등 공산품에도 들어 있을 석면의 함량과 유해성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오는 6월 말까지 검사 기준 설정 및 향후 관리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2004년 김창종 중앙대 약대 교수에 의뢰한 연구용역조사에서 탤크의 위험성을 인지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위해물질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구호에 그쳤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노동부는 1988년 공기중 탤크 규정을 마련하면서 '석면이 함유된 탤크' 기준을 별도로 명시했으나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같은 사실을 몰라 지금까지 탤크의 석면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제약협회도 업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지난 5일 자체 조사 후 석면 함유 우려 의약품을 폐기한다고 밝혔으나 해당 의약품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버텨 빈축을 샀다.

정종호/박수진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