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군자, 소인 그리고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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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한경 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0m
'소인은 한가하면 나쁜 일만 한다(小人閒居爲不善).'
공자는《논어》에서 군자에 대비되는 '못난' 사람을 소인이라고 불렀다. 서로 빗대 대구로 설명하기를 특히 좋아했다. '군자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완성시켜 주고 나쁜 점은 이뤄지지 않게 한다. 소인은 그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고도 했고 '군자는 두루 사귀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되 두루 사귀지는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고 꼬집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글을 읽다 보면 소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못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인은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에 대비된 현실적인 인간의 의미가 더 강하다. 소인은 지금으로 보면 세상을 고생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보면 된다. 그 평범한 인간을 넘어서 고귀하고 이왕이면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즉 군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반성하고 닦아 가야 한다는 것이 유학의 골자인 것이다. 그러니까 '군자'와 '소인'은 남을 평가할 때 쓰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경계하고 수양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조선 중기에 이를 잘못 적용해 자기 편을 군자당이라 하고 정적을 소인당,소인배라고 부르며 당쟁이 격화됐는데 유학 본연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오류인 셈이다.
사실 군자는 요즘 최고경영자(CEO) 리더십 훈련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가치 있는 개념이다. 군자는 간단히 말하면 '멋'있는 사람을 뜻한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기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는 뚝심 있는 사람이 군자다. '남들이 알아 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정말 군자답지 않은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는 대목이 바로 이 뜻이다.
정계와 연예계의 두 리스트로 세상이 시끄럽다.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은 "생각할수록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계나 연예계에 인연이 없어 다행히 비켜 갔을 뿐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돈을 안 받았을지,술자리 초대를 거절했을지 자신 없다"는 그가 너무 솔직해 보였다. 스스로 소인배 기질이 있다고 자책하는 그가 오히려 군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군자,소인 외에 카테고리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정치인 말이다. 경쟁을 장려하는 경영과 달리 정치는 사회 각 집단의 이해관계 조정을 본분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그 기능을 완전히 잃고 오히려 우리 사회 갈등과 부패의 뿌리로 변했다. "이러다가 총선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항간의 우스개이고 보면 사회에 미치는 해악으로서는 정치인이 이미 소인배를 제친 것 같다. 차라리 소인배가 될지언정 이곳 저곳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만은 안 돼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한국의 지금을 리더십의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 군자이기를 포기한 지도급 인사들의 정신적 위기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눈앞의 이해보다는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군자 같은 리더들이 늘어 가야 한다. '군자는 근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君子不憂不懼)'고 했는데 근심 없고 두려움 없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지.
공자는《논어》에서 군자에 대비되는 '못난' 사람을 소인이라고 불렀다. 서로 빗대 대구로 설명하기를 특히 좋아했다. '군자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완성시켜 주고 나쁜 점은 이뤄지지 않게 한다. 소인은 그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고도 했고 '군자는 두루 사귀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되 두루 사귀지는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고 꼬집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글을 읽다 보면 소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못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인은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에 대비된 현실적인 인간의 의미가 더 강하다. 소인은 지금으로 보면 세상을 고생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보면 된다. 그 평범한 인간을 넘어서 고귀하고 이왕이면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즉 군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반성하고 닦아 가야 한다는 것이 유학의 골자인 것이다. 그러니까 '군자'와 '소인'은 남을 평가할 때 쓰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경계하고 수양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조선 중기에 이를 잘못 적용해 자기 편을 군자당이라 하고 정적을 소인당,소인배라고 부르며 당쟁이 격화됐는데 유학 본연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오류인 셈이다.
사실 군자는 요즘 최고경영자(CEO) 리더십 훈련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가치 있는 개념이다. 군자는 간단히 말하면 '멋'있는 사람을 뜻한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기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는 뚝심 있는 사람이 군자다. '남들이 알아 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정말 군자답지 않은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는 대목이 바로 이 뜻이다.
정계와 연예계의 두 리스트로 세상이 시끄럽다.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은 "생각할수록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계나 연예계에 인연이 없어 다행히 비켜 갔을 뿐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돈을 안 받았을지,술자리 초대를 거절했을지 자신 없다"는 그가 너무 솔직해 보였다. 스스로 소인배 기질이 있다고 자책하는 그가 오히려 군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군자,소인 외에 카테고리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정치인 말이다. 경쟁을 장려하는 경영과 달리 정치는 사회 각 집단의 이해관계 조정을 본분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그 기능을 완전히 잃고 오히려 우리 사회 갈등과 부패의 뿌리로 변했다. "이러다가 총선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항간의 우스개이고 보면 사회에 미치는 해악으로서는 정치인이 이미 소인배를 제친 것 같다. 차라리 소인배가 될지언정 이곳 저곳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만은 안 돼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한국의 지금을 리더십의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 군자이기를 포기한 지도급 인사들의 정신적 위기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눈앞의 이해보다는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군자 같은 리더들이 늘어 가야 한다. '군자는 근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君子不憂不懼)'고 했는데 근심 없고 두려움 없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