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다 vs 아니다. "

경기 상황을 놓고 산업계에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낙관론자들은 1분기를 기점으로 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 늦어도 3분기부터는 본격적인 회복 조짐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는 등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바닥론'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3월 무역수지를 사상 최대 규모인 46억달러 흑자로 이끈 환율효과도 경기침체 조기 탈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비관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경기하락의 속도가 더뎌진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회복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한 업계 관계자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2분기 경기위축이 다소 완화되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실제 3분기 경기가 더 악화된 전례가 있다"며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경기가 회복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빙 시작된 경기지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 Business Survey Index)는 86.7이다. 전경련 BSI 전망치는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BSI가 100을 넘으면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하는 기업이,100에 못 미치면 악화될 것으로 보는 기업이 각각 더 많다는 뜻이다.

아직은 경기 악화를 점치는 기업이 호전을 예상하는 기업보다 많다. 하지만 올 들어 지난 석 달과는 달리 비관론자의 숫자가 크게 줄었다. 전경련 BSI는 지난 1월 52.0을 저점으로 2월 66.0,3월 76.1 등으로 매월 개선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사채를 중심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된 것이 BSI가 높아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다른 실물 지표들도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이후 곤두박질치던 중소기업의 평균 설비 가동률은 2월부터 오름세로 반전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 자료에도 제조업 평균 가동률 등 전월 대비 플러스로 전환된 지표들이 수두룩하다.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 역시 15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됐다.


◆반도체,LCD,석유화학 훈풍

경기 회복에 대한 의견은 업종에 따라 엇갈린다. 전자업계에는 긍정적인 전망이 많다. 1년6개월 이상 불황에 시달렸던 반도체 부문은 휴대폰,MP3플레이어 등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의 가격이 뛰면서 본격적인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 12월 1.65달러까지 내려앉았다가1월 2.31달러,3월 3.15달러로 오름세를 타고 있다.

LCD 업체들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다. 디지털TV 교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LCD TV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한 덕이다.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선두 업체들은 올해 초부터 공장 가동률을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바닥까지 추락했던 LCD 가격도 중소형 제품을 중심으로 2~3월 들어 소폭 반등했다. 시장조사 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 57달러였던 19인치 모니터용 패널 값이 3월 말엔 60달러로 3달러 올랐다.

석유화학 업체들도 "한 고비는 넘겼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년 말 50%까지 떨어졌던 유화업체들의 공장 가동률은 지난달 이후 거의 100%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제히 감산에 들어간 중국 석유화학공장들이 가동을 재개하면 한국산 나프타 등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 시장은 여전히 '꽁꽁'

가격이 비싸 불황기에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 어려운 자동차 업계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올해 1분기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생산은 32.1% 감소했으며 내수와 수출도 각각 14.9%와 36.6% 줄어들었다. 자동차 업종은 2분기 이후에도 상당 기간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항공업계처럼 환율 변화에 따라 실적 호전 여부가 결정되는 분야도 있다. 최근 유가가 40달러대에서 움직이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결제 통화인 달러 가치가 올라 저유가로 인한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비행기 탑승객이 줄어든 것도 항공업계에는 악재다. 항공업계가 흑자를 보려면 원 · 달러 환율이 1200원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휴대폰,TV 등 전자제품 세트(완제품) 업체들의 입장은 반대다. 환율 효과 덕에 매출 부진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트 업체들은 연말 전 원 · 달러 환율이 1200원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환율이 유리할 때 사업 구조조정을 마칠 계획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