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순방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낮은 자세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며 '충실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자칫 글로벌 파국으로 갈 뻔했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살렸다. 오바마가 각국 정상에게 건넨 쪽지와 중재안은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 공개 문제로 대립했던 중국과 프랑스 간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절충안을 도출해냈다. 미 · 영과 유럽대륙 간 간극도 훌륭히 메웠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대립을 중재해 세력 균형을 가져온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에 빗대어 오바마 대통령이 '21세기 비스마르크'(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면충돌 있는 곳엔 '해결사'오바마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바마가 G20 회원국 간 주요 대립 사항을 중재하고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프랑스와 중국 간 대립에서 절묘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회의 시작 전 "조세피난처 등 금융시장 규제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회의장을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G20의 '큰손'으로 위상이 높아진 후진타오 주석 간에 블랙리스트 문제는 타협점이 없어 보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닌 중국은 OECD의 조세피난처 리스트를 G20이 승인하는 것에 결사 반대했다. 이 문제로 공동성명 작성이 불가능했다.

두 나라가 입장을 굽히지 않자 오바마 대통령은 사르코지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을 차례로 회의장 구석으로 불러내 합의를 이뤄냈다. 사르코지 대통령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사르코지에게 개별적으로 얘기를 나누자는 신호를 보낸 뒤 코너에서 통역사만 대동한 채 몇 가지 타협안을 제시했고,뒤이어 후 주석에게 그 중 한 가지 안을 메모로 전달했다. 후 주석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그를 구석으로 불러내 설득했다. 결국 세 정상은 보좌관,통역사들을 대동한 채 구석에 함께 모여 "OECD의 리스트에 유의한다"는 중재문안으로 타협을 이뤄냈다. 곧이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회의 종료 발언을 요청했고 오바마가 회의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자 회의장에선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카우보이식 외교에서 벗어나

로이터통신은 G20 회의장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부시 전 대통령의 카우보이식 외교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각국 수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오바마니아(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열광)'가 됐다. 미국의 정책에 맞불을 놨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바마에 대해 "아주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호평했고,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 대통령은 좋은 결과를 얻는 데 특별한 관심을 뒀고 세밀한 문제의 해결에도 관여했다"고 칭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은 경청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의 새로운 동지"라고 부르며 친밀감을 표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