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이런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내가 주막에서 한 잔 하다가 사소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사람이 4×7=27이라고 우겼다.
“에이, 이 사람아 4×7=28이지.”
“뭐, 28? 아니야 27이야.”
“우길 걸 우기라고. 4×7=28이지 어째 4×7=27인가?”
“무슨 소리, 분명 27이야.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구.”
두 사람은 서로 옳다고 우기며 옥신각신 했다.
사내는 하도 어이가 없어 옆 사람에게 물었다.
“4×7이 28입니까, 아니면 27입니까?”
“28아닌가?”

사내는 “거보라고 28이 맞지.”하고 의기양양했지만 그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사람이 뭘 안다고 그래. 분명 27이 맞다니까.”
사소하게 시작한 말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멱살잡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관아의 원님을 찾아가 결판을 내기로 했다. 두 사람은 급한 일이라며 과연 누가 옳은지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곰곰이 자초지종을 듣고 있던 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27이라고 우긴 사람을 돌려보내고, 사내만 댓돌아래 무릎을 꿇게 했다. 사내는 그때까지 영문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했다. 원님은 아전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잠시 후 돌아온 아전의 손에는 큼지막한 곤장이 들려져 있었다.
“저 놈을 형틀에 묵어 곤장을 쳐라.”
사내는 어이가 없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두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하도 지엄하게 명하는 지라 얼떨결에 엉덩이 곤장을 늘씬하게 맞았다. 사내는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했다.
“사또나리, 그럼 4×7이 28이 아니란 말입니까?”
원님은 “아직 정신을 덜 차렸군?”하며 엉덩이를 한 차례 더 치게 했다.
“이보게 잘 듣게. 자네가 왜 곤장을 맞았는지 아는가?”
“............”
“4×7이 27이 맞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더 나쁜 사람은 자네일세.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27이라고 우기겠는가. 그런 사람을 상대로 옳고 그름을 다투고, 그런 하찮은 일로 공무에 바쁜 관아에 찾아와 천금 같은 시간을 빼앗으니 자네야말로 죄인 아닌가. 죄도 제정신인 사람에게 물어야하네.”
사내는 아무 말 못하고 피멍이든 엉덩이만 어루만지며 절뚝절뚝 관아를 나왔다.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신용불량에서부터 기업파산까지 본의 아니게 경제적 범법자가 늘어나는 요즘,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일 준다’는 상대방이 가장 무섭다. 내일이 모레 되고, 모레가 일주일 되고, 일주일이 한 달, 일 년이 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절대로 ‘안 갚는다.’, ‘못 갚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차일피일 줄 듯 말 듯 하루하루 미룬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야 한숨이 나오고 속이 쓰리겠지만, 크게 보면 더 나쁜 사람은 사기꾼이 아닐 수도 있다.

왜 그렇게 어이없이 사기를 당하는 것일까. 사기꾼의 절대 원칙은 상대방의 무리한 욕망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부 사기 피해자는 자기의 무리한 욕심에 되치기 당한 결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과 분수를 잘 아는 자는 누가 뭐래도 한눈팔지 않고 자기의 길을 꿋꿋이 간다. 사기꾼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도 모르게 남의 탓을 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나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막연히 또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속고 있는 자신을 ‘속지 않고 있다’며 또 한 번 자신을 속이는 마음이야말로 더 나쁜 죄질이 아닐까.

그 어떤 위대한 신을 향한 기도보다도 냉엄하게 자신을 직시했을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경우를 늘 주변에서 목격해오고 있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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