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 외에 규장각 도서 중 일부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불법으로 반출됐다. 이토는 귀중한 책들을 '대출' 형식으로 가져갔지만 대부분 반납하지 않았다. 국제적인 관행으로도 대여해 간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을 경우 불법 반출문화재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들 문화재는 아직 일본에 남아 있다.

'한국 회화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한국에 없다. 그림이 사라진 지 440년이 지난 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왔던 왜장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이 걸작은 격동기의 혼란 속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구입할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문화재로 등록됐다.

외무고시 첫 여성 합격자이자 여성 2호 대사인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61)가 약탈 문화재의 역사와 반환 문제를 다룬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에서 들려주는 얘기다.

30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김 전 대사는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 시절 문화재 반환 문제에 관한 국제적 시각을 갖게 된 뒤 프랑스와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 당시 자문위원을 지내고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문화재 강의까지 진행한 '문화통'.

그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이 150여점의 도자기와 불화 · 불상 · 전적을 거의 공짜로 수집(?)해 미국으로 가져간 '헨더슨 컬렉션 비화'도 깊숙하게 파헤쳤다. 헨더슨은 1958년부터 6년간 고려청자와 가야토기 등 주요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싹쓸이해 검색 면제 대상인 '외교관 이삿짐'으로 반출해갔다.

이처럼 해외 각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 방법은 뭘까. 그는 이미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재를 돌려받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전 국민적으로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반환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가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의 신상(엘긴 마블)들을 되찾기 위해 200년 동안 영국과 싸우며 국제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게 한 예다.

그러나 약탈 문화재니까 무조건 돌려달라고 한다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덧붙인다. 약탈의 주역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반대 논리를 개발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펼치는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

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를 국립도서관에 오랫동안 방치해 놓고도 '인류 공동의 문화재'라는 논리를 펴는 것은 어불성설이며,감상용 그림도 아니고 조선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를 기록한 문서인 만큼 이를 연구하고 해독할 수 있는 본국으로 가져와야 된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이번 책에서 다룬 약탈의 수난사를 보면 이 같은 '전략'은 한층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는 세계 최초의 문화재 약탈로 기록된 함부라비법전 비문과'밀로의 비너스상'의 왼팔이 잘린 이유 등 '탐욕'의 밑바닥을 건드리면서 식민지 문화재 반환의 전기를 이룬 아이슬란드 고문서 등 '역사적 정의'의 순간을 함께 비춰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