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를 쥐락펴락해 온 올리가르히(신흥 과두재벌)가 금융위기 속에 '막대한 빚'의 올가미를 쓰고 단두대로 향하고 있다.

1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많은 기업들이 채무를 갚지 못할 형편이지만 러시아 정부가 나서 빚을 떠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이상 정부 구제금융을 기대하지 말라며 올리가르히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 주요 기업 및 은행의 채무는 총 500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4분의 1이 넘는 1300억달러가량의 만기가 올해 도래한다. 이 중 대부분이 올리가르히가 갚아야 하지만 지불능력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올리가르히는 1990년대 초반 사유화 과정에서 국유재산을 헐값에 넘겨받아 엄청난 부를 쌓은 러시아 신흥 재벌이다. 석유 · 가스 광물 등 천연자원 분야를 독점한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시절 전 세계 상품시장의 붐을 타고 엄청난 부를 모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유가가 40달러대로 폭락하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 포브스지가 집계한 올해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오른 32명의 러시아 부호의 재산은 지난해보다 2500만달러 급감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업체인 러시아 루살은 알루미늄 가격 폭락으로 자금난에 빠지자 최근 해외 채권자들에게 손을 벌려 74억달러의 채무 만기를 두 달간 유예받기도 했다. 일부 올리가르히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정부에 귀속시키는 대신 서방은행에 진 빚을 갚아달라는 '재국유화' 제안을 내놓고 통사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들 기업이 해외 자본의 수중에 넘어가길 원치 않는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단기 금융지원을 해줬지만,정부 사정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이미 루블화 방어에 2000억달러를 넘게 썼지만 통화가치는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고,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는 등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