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상품 키코(KIKO)에 가입해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낸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 자본 대부분을 잠식한 탓이다. 자본 완전잠식 기업은 원칙적으로는 증시에서 퇴출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환율 변동으로 피해를 본 기업은 2년간 유예기간을 주기로 한 만큼,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이의 신청을 통해 구제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에스에이엠티 태산엘시디 IDH 심텍 등은 지난해 키코로 수백억에서 수천억원대 손실을 기록, 자본이 완전 잠식됐다.

전일 실적을 발표한 IT부품 유통전문업체 에스에이엠티의 경우 지난해 매출 8169억원, 영업이익 156억원을 기록하고도 키코계약 탓에 순손실이 180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에스에이엠티는 작년 4분기에만 618억원의 파생상품 손실을 기록하는 등 작년 한해 키코 등 파생상품 계약으로 2375억원의 손실을 냈다.

키코계약 만기가 올해와 내년에도 있는 만큼, 급격한 환율 하락이 없는 한 에스에이엠티의 키코 손실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산엘시디 IDH 심텍 등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한국거래소는 환율 급등에 따른 기업들의 무더기 상장폐지를 우려, 지난해 10월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개정된 안에 따르면 환율변동으로 인해 자본전액 잠식에 빠진 기업은 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액을 당기순손익 항목에서 빼주기로 했다.

한국거래소는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인 이달 말 이후 환율변동에 의한 자본잠식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의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이의신청 기간은 통보 후 7거래일 간이다. 이후 15거래일 이내에 상장위원회를 열어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위원회는 주채권은행의 의견서와 외부감사인의 의견을 종합, 환율변동에 의한 손실액 등을 따질 계획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키코나 외화대출 등 영업 이외의 부분에서 환율때문에 손실을 본 부분을 충분히 감안할 것"이라며 "무더기 상장폐지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관련 절차를 최대한 빨리 진행해 이르면 5월초쯤 이들 기업의 주권매매가 재개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