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가 테러범들에게 공중납치됐다. 테러범은 승객들을 인질로 잡고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그들은 승객 중 한 사람을 앞으로 끌어냈다. 끌려나온 사람은 중년의 신사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총을 든 테러범이 소리쳤다. "겁쟁이처럼 굴지 말고 남자답게 죽으시오." 그러자 신사는 테러범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많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선생님도 아마 나처럼 울게 될 겁니다. " 잠시 생각하던 테러범은 동료들에게 갔다오더니 그 신사를 승객들 사이로 돌려보냈다. 두 시간 후 협상이 마무리됐고 인질들은 모두 풀려났다.

한국인 최초의 갈등해결학 박사인 강영진씨가 《갈등해결의 지혜》에서 들려주는 실제 사례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도 협상과 갈등의 원리를 알고 대처하면 이처럼 극적인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그가 강조하는 원리는 '상대방과 나의 관점을 연결하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는 고향의 가족과 친지'라는 인간적인 고리를 무의식 중 활용한 신사의 태도에는 "살려달라"는 자기 중심적 관점보다 "당신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상생적 관점이 녹아 있다.

또 다른 얘기 하나. 오렌지 하나를 놓고 두 남매가 서로 갖겠다고 싸우고 있다. "둘이 반쪽씩 나누라"는 '양보와 타협'도 통하지 않고 "자꾸 싸우면 내가 먹어버리겠다"는 '위협'도 먹히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왜?"라고 묻는 것이 최고다.

누나는 "전에도 내가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댄다. 동생은 "내일 미술시간에 오렌지 껍질로 공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해결책이 동시에 보인다. 알맹이는 누나가 먹고 껍질은 동생이 갖고 가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재미있는 사례를 통해 갈등 해결의 지혜를 알려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